오늘은 어디 가는 날인가. . . .빠뜨나를 거쳐서, 오후에 기차 타고 깐푸르 가서 (9시간) 다시 깐푸르Kanpur에서 새벽 세시에 에 두시간 기다려서 기차 타고 쟌시 가서 (4시간) 쟌시Jhansi가서 아침에 오르챠Ohrcha까지 들어가는 날이구나.
오늘 밤에는 기차를 두번 타네. . . . 솔차니 무리가 되는 일정이네. . . . 우선 빠트나를 가 보자. 완행 기차 타고. . . . ------------------------------------------------ 빠뜨나는 현재 이름이고 옛적 이름은 파탈리푸트라.(한자로는 화자성, 華자城) 아쇼카 왕의 마우리아 왕조의 도읍지이다. 원래는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이 도읍을 이리로 옮기려고 했다. 그는 재상인 우다인Udayn 을 시켜서 건축을 시켰다. 그러나 아들 아사세 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만다. 나중에 우다인이 왕이 되어 마가다 국의 수도를 이리로 옮긴다. 그리고 나중에 아쇼카 왕의 할아버지인 찬드라 굽타가 여기서 전 인도를 통일해서 마우리아 왕조를 이룩한다. 그 후부터 이 화자성은 천년간 전체 인도의 수도가 된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화자성은 지금 페허로 남아있다고 한다. 슬쓸한 화자성을 꼭 보고 싶었으나, 그곳 페허의 터 에서 아쇼카 왕의 체취를 직접 맡아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빠드나는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이 지역 비하르 주의 성도이다. 현재 바뜨나의 인구도 170만명은 되고, 비하르 주 전체의 인구도 몇천만 (몇억?)은 된다.
불교 유적지는 거의 대부분 비하르 주에 있다. 이 비하르 주는 현재 인도에서 대표적으로 가난한 주이다 가장 인도에서 국가가 먼저 발달햇던 지역이고, 가장 평야가 많고 농경이 발달했던 지역이다. 그 지역이 왜 가장 가난한 지역이 되었을까.
아마도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이전하는 데 실패해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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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second class 기차를 탔다. (이 구간은 기차표가 없어서 예매를 못했다) 북새통에 매달려서 갈 각오를 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날 쫓아 오더니, 따라 오란다. 날 데리고 간 곳은 SL, 즉 예약이 필요한 침대칸이었다. 자기 자리 옆에 같이 앉았다. 엄청시레 고마웠다. 여기는 빈자리가 많은데 거기서 어렵게 갈게 무어냐는 거다. 그렇게 편히 라지기르에서 빠뜨나까지 왔다. (사실은 알고 보니 자기 자리도 아니었다. 자기도 세칸 클라스였던듯.)
나중에 오르챠에서 만난 학생-한양공대생-말로는 거기서 표검사 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무척 낸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그 아저씨가 고마웠고, 지금도 고맙다. 외국인이 큰 배낭 메고 second class 를 타는게 안스러웠던게지.
그렇게 세시간만에 도착한 빠뜨나 역, Patna junction station
우선 cloak room 을 찾아서 짐을 맡긴다. 왜냐 오후 6시 20분에 깐푸르행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이젠 cloak room 찾는 데도 좀 요령이 생겼다.
릭샤를 타고 빠뜨나 박물관을 찾아간다. 뭐 유명한 유물이 많다나. . . 워낙 유명한 박물관이라니까. . . .
박물관 모습은 단아하다. 배가 고팠지만, 어디 마땅히 먹을 곳이 없다. 입장료가 역시 내국인은 10루피이지만, 외국인은 250루피이다.
박물관내부는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사진을 못 찍으면 남는게 없는데. . . . 이걸 다 기억할 수는 없고. . . .
살짝, 모올래 한장 찍었다. 중요한 것 같아서. . . . . 고대 문자가 새겨진 돌을 발견했다는 거다.
나중에 학교 가서 도서관에서 도록을 빌려서 스캔을 해야지. . . 요런 야무진 생각가지 해 가면서 보았다. 중요한 유물이라고 해서 한번 더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광수의 네번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와, 불량배와, 개에 이은 네번째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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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도 마렵고 해서 박물관 화장실을 찾는데 화장실이 없다. 물어보니 어디라고 가르쳐 주는데, 못찾겠다. 겨우겨우 찾은 곳이 수위실 엎에 허름한 계단짬에 . . . 그것도 화장실이라고. . . .
거기서 소변을 보고, 날이 더울것 같아서 내복을 벗으려고 바지를 벗는데 (좁은 곳이다. 가방도 목에 걸고), 바지에서 뭐가 "툴" 흘러 떨어진다. 그러더니 미끄러져 들어가서 물속으로 빠져 버린다. . . . . . 이게 뭔가?? 아뿔사. 디카가 물에 빠졌네 ??!! 어, 저거 여름이 (우리 딸) 디칸데. . . 사십만원짜린데. . . 어 근데 그럼 사진 찍은 것도 다 버리는데??. . . . 어어. . .
겨우 건져서 얼른 바지 입고 나와서, 수건으로 닦고 스위치를 올려 보았지만, 켜지지를 않는다.
다시 밧데리를 배고, 메모리를 빼고 철저히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나서 해 보아도 역시 안된다. . . . .
망연자실. . . .사진도 다 벼렸네. . .여기가 불적지 마지막인데, 불적지 사진도 버렸네. . . .
그 때는 이미 계속되는 여행의 스트레스에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던 때였다. 아, 왜 인도의 신은 나를 이렇게 짓굿게도 괴롭히는가. . . .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구나. . . .
아쇼카 왕의 왕궁터도 물론 못가고, 갈 기력도 의지도 없고. . .가 보아도 사진도 못 찍을 것이고. . .
양지바른 곳에서 디카라도 말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해 보았지만,. . . . 별로 소용이 없었다.
드라이버를 사서 그래도 열어서 물기라도 닦아 볼까. 그래 드라이버를 사자. 릭샤를 타고 물어물어 초소형 드라이버를 구해 보았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보석,시계, 핸펀 파는 곳을 가서 초소형 드라이버를 빌려서 디카를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도 않고, 그래봐야 될 일도 아니었다.. . .
이제 어쩐다. . . .
"그런데 오늘 일정도 만만치가 않다. 9시간 기차 타고 깐푸르에서 새벽 3시부터 다섯시까지 기다려 다시 쟌시행 기차를 타고 네시간을 가서 쟌시에서 오르챠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건 그렇지만 그 다음날은 기차타고 보팔에 가서 산치까지 올라갔다가 밤기차로 뭄바이까지 가야한다. 뭄바이에서 일박한 연후에 밤기차를 타면 다시 새벽 네시에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한다. 새벽네시부터 아우랑가바드 역에서 또몇 시간을 오들오들 떨어야만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 다음에 휴식과 편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정은 게속된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짰는가. 아 내가 왜 이렇게 인도 실정을 몰랐던가. 이번 계획은 완전히 실패다. 그리고 인도의 신은 계속 짓궂게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이 인도의신이 계속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 앞으로도 나를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 앞으로는 사진은 못직는다, 그러면 이번 여행은 50% 이상이 실패다라는 생각, 이 생각이 남쪽 계획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포기"라는 말을 정말 쓰고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랬다. 나는 "기가 꺾였다"라는 말을 정말 쓰고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못 먹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 . . .
사실 이런 고민은 디카가 물에 빠지기 전부터도 좀 있었던 것이었다. 디카 사건으로 그 생각이 굳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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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일정이 5일이다. 5일동안 갔다가 올라오면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 들리는 것이다. . . . 그러면 그냥 오르챠와 아그라에서 도합 7일을 때우는 거지 뭐. 거기서, 그 두 군데서 7일동안 빈둥대자. 그리고 좀 회복하자.
그러면 일단 오르챠가지는 가고 보자. 거기서 보판, 뭄바이로 안 가고, 아그라로 바로 빠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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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푸르행 기차가 밤 6시 10분에 있다. 그때까지 역전에서 빈둥빈둥. 다행히 역전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붓다기념공원이었다. 입장료를 10루피식 받으니 정갈하게 유지되었다.
사진을 그래도 찍는답시고 몇장 찍었다. 뭘로? 스마트폰으로. 그러나 그 스마트폰 역시 3일 후에 소매치기 당한다. 그래서 여기는 아예 사진이 없다.
기차는 한시간 연착되어서 바뜨나 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시간 더 연착되어서 (10시간 걸려서) 깐푸르 역에 도착하였다.
원래 03시 20분 도착에정이었건만, 6시경에 깐푸르에 내려서 보니, 05시 35분에 떠나는 쟌시행 기차는 벌써 떠난 후였다. 물론 예매해 둔 표는 버렸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
결국 08시에 출발하는 기차 second class를 타게 되었다. 아무리 해도 second class 를 안탈 수가 없다.
그래도 앞으로 난 다시는 죽어도 세칸 클래스는 안탈껴 !!
빠뜨나에서 출발한 다음날 2월2일 목요일에 오토릭샤를 타고 오르챠에 들어간 것은 대낮이었다.
완전 패잔병이었다. 하루 종일 패잔병이라는 단어만 내 머리 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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