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따통을 보는 날이다.
갈 곳은 세곳. 윈강석굴과, 화엄사, 그리고 선화사.
따통에는 현공사가 유명하다. 절벽 벼랑에 세운 절인데,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잇는 듯하다고 해서 이름도 현공사.
교외에 있는데, 전날 오대산에서 올때 그 지역을 지나갔지만 보지는 못햇다.
또하나. 木塔인데, 나무로 만든 탑인데 무지 크다고 한다.
목탑인데, 오랜 전란에도 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보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그래서 못 가 보았다.
다음날 오전에 기차로 북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
나중에 와서 볼 것을 남겨 놔야지. 다 보면 쓰나. . . . .
혹시 따통 가시면 현공사와 목탑도 챙겨 보세요.
그러자면 만 2일 이상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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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최대의 목표 윈깡 석굴을 보러 가자.
아침 일찍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한다.
다행히 윈깡 석굴은 시내버스로도 갈 수 있어 편리하다.
물론 따통 시 당국도 관광 여행 거리로 가장 많이 선전한다.
너무 일찍 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중국인들도 여행 철이라서 많이들 간다.
버스 갈아타는 곳.
시내에서 3번을 타면 된다. 단돈 1위안이다. 175원 (외화는 팔때 살때 값이 다르니까. . .)
버스 타기 전에 아침으로 또 만두
이날의 만두(빠오즈)는 상당히 맛이 있었는데, 완톤까지 먹었다.
물만두 같이 생긴 것이 완톤이다.
(이게 3위안= 500원 하는데, 얼마 전에 동국대 앞에서 이와 비슷한 물만두를 먹었는데, 만천원인가 한 것 같다. 그 집은 정말 비싸기만 하고, 양도 조금 준다. 다른 사람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인데. . . .)
완톤이라고, Wanton으로 쓰는데, 어떤 지방에서는 훈툰이라고도 한다.
여기는 북방이고 비교적 표준어에 가까울텐데, 오히려 여기서 완톤이라고 쓴다.
한자로는 餛飩.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니, 윈깡 석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홀을 통해서 들어간다.
아마 여기도 60살 이상 경로 우대로, 입장료를 (제법 비싸다 200위안쯤) 안 내었던 것 같다.
샨시성(山西省)은 그게 좋다.
save 한 돈으로 불전에 돈좀 놓고, 윈깡 관련 책자와 지도 좀 사고 그랬다.
담요 스님의 상이다. 따통은 북위의 수도이다.
효문제때 남쪽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494) 얼마 안 있어서(534) 망한다.
그러니까 북방민족은 (북위는 선비족) 고향을 떠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진취적인 기상을 잃는다.
북방민족이 중국 한족을 따라 하려다가는 망한다.
문화와 정신이 망하면 나라는 따라서 망한다.
우리도 이렇게 미국, 유럽 좋아하다가는 언제 망할 지 모르지.
북위는 불교 이데올로기로서 나라를 강력하게 통치하고자 하엿다. 그래서 윈깡 석굴을 만들고, (고려에서 대장경을 만들었듯이) 그 정신적인 지주로서 담요 스님을 초청해서 국사로 모셨다.
윈깡석굴은 담요스님의 통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이미 전에 만들어진 석굴들도 있는데, 거기에 대불 다섯 위를 새로 크게 만드셨다. 그래서 담요 5불이라고한다).
이 시기는 AD 460년 경이라고 한다. 그 때는 文成帝와 그 아들 獻文帝의시기이다.
효문제가 즉위한 것은 471년이고, 그가 낙양으로 천도해서 적극적으로 중국화를 추진한 것은
494년이다.
물론 낙양으로 가서 다시 추진한 것이 낙양의 용문 석굴.
입구
코끼리를 맏치고 있다. 누구인가? 사람은 아니겠지? 원숭이인가? 야차인가?
호화스러운 부조들,
입구에는 두분의 보살님께서 불을 밝히고 계시다.
아침 8시 반.
입구에 인공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관광 목적.
천불당이라는 사찰을 세워놓고 이런 탑을 만들어 놓았다.
탑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슬슬 석굴 입구로 들어가게 된다.
무수한 감실의 무수한 부처님들.
담요 5불 중의 하나인 유명한 부처님,
벽에도 화려한 벽화가 남아있다.
.
많이 마멸되었지만 그래도 기둥과 벽에도 무수한 부처님들이 계시다.
감실의 깊이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아래, 사랍들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높이 쳐다보아야 보인다.
무수한 부처님들. . . . .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들. . ..
인부ㅡ 한 사람이 부처님 발가락 끝에 않아서 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허공중에 떠 계신 많은 부처님들.
아득히 높아만 보인다.
벽과 지붕, 천정의 무수한 부처님들. ......
그런데, 이 윈깡 석굴은 서기 494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연대가 중요하다. 왜냐.
그때는 6조 혜능스님도 없었고, 화두도 선종도 없었던 때이다.
물론 화엄경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화엄종은 물론 없었다. (서기 600년 이후)
기신론도 없었다.
그래도 불교는 이렇게 발달했었다.
자, 달마가 오고, 6조 혜능의 선종과 화두선이 생겨나고,
화엄종이 생겨난 그 이후의 불교가
이당시 북위 시대의 불교보다 과연 얼마나 더 발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
6조스님이나 화엄종이 없었을 당시에도 불교는 이렇게 왕성했었다.
달마나 화엄종 없이도 불교는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닐까?
무슨 말인가 하면 화두선이나 화엄종이 없으면 불교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불교관에도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 내가 목을 걸고 공부하는 화엄종이란 것이 과연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던가.
그것 없이도 인간은 잘 살지 않았는가?
"달마선 해서, 살림 얼마나 나아 지셨습니까?"
화려한 벽화의 무늬들. . . ..
때로는 심하게 마멸된 것들도. . . .
석굴을 지나 나가면 거대한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속에도 부처님 부처님. . . .
때로는 이렇게 빛의 현란함도.
북위를 일으킨 선비족이다.
선비족은 한자로 鮮卑族이라고 쓴다.
그렇게 본다면 조선의 "선"자 아닌가 !
우리가 북방민족의 한 계통이란 것은 알지만,
이건 예사의 일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이라고 했지만. (그래서 지금도 북한은 조선이지만)
그것은 史書에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인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웠다는 데서 비롯된다.
즉, 조선은 이성계의 조선이기도 하지만,
중국 사서에 나오는, 그리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의 조선이기도 하다.
새벽 朝는 또 무언가.
鮮족인데, 새벽, 해뜨는 동쪽에 있는 鮮족이라는 뜻 아닌가.
박물관 밖으로 나와서. . .
(인간들 참 크게도 짓는다. . . )
출구쪽, 푸드코트와 기념품,ㅡ 장난감들. . . .
밖으로 향하는 정원.
이제 다 봤으니 이동해야지. . .
시내버스 타고, 화엄사로 가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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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참고로 찾아본 윈깡석굴 자료이다.
이 석굴들은 육조시대에 해당하는 5세기에 산시 성[山西省] 북부와 만리장성의 접경 부근에 건축되었다. 윈강 석굴에는 중국 불교예술의 첫번째 개화기라고 할 수 있는 북위시대(386~534)의 유물들이 함께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예술의 유적이다. 부드러운 사암(砂岩)으로 이루어진 낮은 낭떠러지를 파서 대굴 21개, 중굴 20개, 무수한 소굴·불감(佛龕)들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몇 개는 단순히 거대한 석가모니상(높이 14m)을 둘러싸고 있는 방 같은 것이지만, 후실(後室)이 있는 석굴도 있다. 초기의 5개 석굴은 460년 무렵 당시의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주관하여 건립한 것이다. 이것은 이민족인 탁발씨(拓拔氏)가 세운 북위의 황제들이 446~452년의 불교탄압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행한 조치들 가운데 첫번째 사업이었다. 석굴마다 들어선 거대한 불상은 북위 초기의 다섯 황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로 보아 조정에서 불교를 정치에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은 494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494년 북위는 수도를 허난 성[河南省] 뤄양[洛陽]으로 옮겼으며, 이후 일련의 새로운 석굴사원을 룽먼[龍門]에 만들었다. 뛰어난 조각양식을 보여주는 수많은 조각상(가장 중요한 석가모니상과 상대적으로 수효가 적은 보조 불상)은 궁극적으로 인도의 불교예술에 기원을 둔 다양한 외래 예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이후의 주요작품에는 중국 고유의 양식과 형태에 근거를 둔 새로운 '중국양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윈강 석굴을 첫번째 유형의 양식으로, 후기의 룽먼 석굴을 2번째 유형의 양식으로 규정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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