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은 북경의 서쪽에 있는 대표적인 산이다. 남산 쯤에 해당한다.
향산 공원이 있어서 북경 시민들이 가벼운 소풍길로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화원에서 비교적 가깝다.
북경에는 물론 유명한 사찰들이 많이 있다. 다 볼 수는 없고, 향산에 있는 벽운사도 나름 의미있는 절이라고 해서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다.
물론 북경에서 해야할 최대 과제는 다음날 법원사에 가 보는 것이다.
법원사가 뭐냐하면, 북경불학원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북경불학원은 종전 이후, 중국불교도 협회에 의해 운영되면서, 대륙불교의 중심지역할을 해 왔다. . 그건 다음날 보고.
우선 향산(香山)부터 가 보자.
이화원 앞을 나서면 평양 해당화 냉면집이 보인다.
다음은 벽운사에 관한 자료.
여기서 "아직 중국 불교도협회로 이관되지 않았다" 는 귀절에 좀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불교도협회로 이관된다는 것은, 종교시설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즉 살아잇는 절이다. 신도가 있고, 종교활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관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 즉 문화재이거나, 고적이라는 뜻이다.
향산공원 입구
안내판을 찍은 것이다.
AAAA급 관광지라고하는데,
아마도 다섯개 짜리가 가장 높은 것 같다.
그래도 서너개 짜리는 매우 많다.
북경이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기 때문에 이 향산공원에도 사연이 많다.
그래도 역시 손중산, 손문의 사후에 그의 영가를 안치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손중산은 북경에서 죽었다.
공원 경내/.(여긴 공원이라도 입장료가 있다)
연못 뒷켠 동굴 속으로 ㄷ르어가서 거기서 내다본 광경.
물이 떨어져서 시원하다.
사람들 안 보는데서
떨어지는 물에다가 머리를 처박고서 머리 샤워. . . .ㅎㅎ. . .
케이블카 타는 곳.
벽운사 입구. 이 문은 초라하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웅장한 문이 있다.
능인 적조라고 써 있는데, 능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시다.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고 생각되는데,
안내판에는 역시 대웅보전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부처님 사진을 찍고. . . . .
나한당.
석문 벽에 새겨진 부조들. 많이 있는데, 하나만 올린다.
건륭 황제께서 하사하신 금강보좌탑.
손중산선생 의관총인데, 즉, 타계하실 때
입으신 의관, 옷을 여기에 모셨다는 것이다.
손문은 1925년 이곳 북경에서 타계하였다. 당시는 순원(손문)에 의해서 국민당 정부가 강력한 통치를 하고 있던 때였다.
순원의 죽음은 간암으로 인한 병사이다.
그런데, 국민당 정부는 순원을 기리기 위해서, 당시 정부의 수도인 남경에 순원의 묘역을 크게 꾸미고, 릉묘를 조성한다.
3년에 걸친 공사이다. 그이름은 중산릉.
즉 릉이란 황제와 그의 일족의 무덤에 붙이는 이름이다.
남경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손중산의 시신은 이 벽운사에 4년동안 안치되어 있다가 남경으로 갔다.
그래서 북경 시민들은 할수 없이 여기에 손중산의 옷가지라도 모셔서 추모의 념을 달랜 것이다.
구룡백. . .측백나무가 아홉마리 용처럼 엉켜져 있다고. . .
그 뒤로 탑이 보인다.
탑이 상당히 높다.
역시 손이 여러개이시니까 관세음보살님이실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투박한 솜씨가 오히려 서민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서산 마애석불에서 느낄 수 잇는 기분이다.
대개 관세음보살님은 화려한 치장을 많이 하시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오히려 소박하다.
손중산 기념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의 가면) 는 서로 원수지간이고,
중국이건, 우리나라건 서로 죽이지 못해서 싸우는데,
그래도 손중산은 양쪽에서 모두 추앙을 받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그래서 손중산의 위대함이 될 것이다.
자유중국의 타이페이 국제공항이 중산국제공항이던가?
손문, 쑨원은 손중산인데 (대륙과 타이완에 손중산이란 이름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도로이름, 공항 이름, 공원 이름. . . . ), 그 중에서 손일선(逸仙)도 그의 호이다. 손잇센인데, 그 발음이 홍콩, 꽝쪼우 등 남부로 가면
또 손얏센이 된다. 광동어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또 그의 고향은 광동성 가난한 농촌 마을인데, 향산(香山)이다.
여기의 향산과 글짜가 같다.
그의 고향 향산은 이제 그의 이름을 따서 그 이름이 中山으로 바뀌었다.
3 년전, 마카오 건너 海州(하이저우)에서 꽝쪼우로 갈 때 버스로 그의 고향을 지나친 일이 있다.
버스타고 나오는 길에
중국 임업 연구원 간판이 보인다.
국방 과학원 건물도 보이고. . . .
역시 북경이니까 이런 국가 차원의 건물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방과학원은 홍능에 있지. . .
경희대학교 가는데. . . . .
투 스타.
지금은 쓰리스타인가?
사단장 끝내고 가는데.
북경대학교 치과대학 건물도 보인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보다 훨 낫다.
아, 망할 놈의 서울 치대.
웬수 같다.
더는 묻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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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옹화궁으로 향한다. 현지 말로는 용허꽁
그 앞에서 마파두부를 먹었나? 기억이 잘 안난다.
관광객은 많다.
참배객도 많고. 서양놈들도 많고. (베이징이니까. . . .)
현판에 다양다기한 민족 문자들. 만주 문자, 티벳 문자, 몽골 문자 . . .
꺼종꺼양 (各種各樣),
건물은 뭐 역시 크다 . . .
이젠 뭐 건물 큰 것에 대해서는 . . . .
두마리의 거북이가 사자 앞에서 지키고 있다.
용허꽁을 나와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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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멀지만 천단을 가 보기로 했다.
워낙 대표적인 관광지로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또, 시간적이 제약이 있어서 다른 데는 가 볼 수 없고, . . . .
그러나, 힘들게 가본 곳 치고는 (입장료도 제법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아서 줄도 오래 서서 기다려서야 들어갔다) 상당히 실망한 곳이다.
뭐 볼 이유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적도 아니고,
예술적인 것도 아니고. . .
큰 의미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 . .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데도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 . .
간단히 몇 장만 보고 넘어가자.
넓다.
줄 서서 들어간다.
신년전이라고 썼다.
정월 초하룻날 여기서 천신께 제사를 지낸대나 뭐래나.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역에서 찍은 광고사진이다.
생수 선전인데, 생수 이름이 곤륜산이다.
아마도 곤륜산의 깨끗한 물을 퍼 왔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 삼다수쯤 될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이 "곤륜산" 이 예사스럽지가 않았던 과거가 있다.
실제로 곤륜산은 중국 남부 티베트와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산맥이다.
어마어마한 산맥이다.
그런데 이 곤륜산맥은 내게 신비의 산맥으로 남아있다.
고1때-그러니까,. 1968년 -47년전- 국어 선생님이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시조를 하나 가르쳐 주셨는데,
대붕(大鵬)을 옆에 차고, 곤륜산을 넘어드니
. . . ? (잊었다. . .오래돼서). . .
태산(太山)이 발길에 차여 왜각대각하더라
뭐 그런 시조이다.
당시 선생님은 "누가 지었는지 연유도 모르는 시조이지만, 그 호방함이 너무 좋아서 당신께서 즐겨 외우신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곤륜산이란 건 어디있는지 당신도 잘 모르시;겠고,. 지리적인 산인지, 아니면 그것이 상상의 산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도 그 호방함이 좋아서 즐겨 외웠는데, 사실 그때부터 그 곤륜산이란 곳이
나의 미지의 궁금중과 함께 신비로운 산으로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중에 각종 지도책을 보고서야 그것이 중국에 실제로 있는 산맥이라는 것을 알았자만, 당시는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고, 좋은 지도책 하나 변변히 없던 시절이었다. 한동안 나는 지도책에서 곤륜산이라는 것을 찾느라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다)
그 오랫동안 내게 신비의 갈수 없는 곳 (히말라야 산맥 보다도 더욱)으로
남아있던 곳이 이렇게 실체화되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지도책에서 "곤륜산맥"을 발견했을 때의 섭섭함이란,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여인을 너무도 쉽게 벌겨벗겨 놓은 허탈감이라고나 할까. . . .
그러나, 여전히 실제의 곤륜산은 완강히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나의 위대한 거인이던 곤륜산맥이 이렇게 생수라는 형태로,
이렇게 초라하게 내앞에 나타나도 되는가,
정말 기분이 묘해지는 광고였다.
또하나의 지하쳘 광고또한 생수 광고이다.
빙천 건강 자양이니까 생수는 아니라도 음료수 광고이다.
생수나 음료수나 값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사람들이 김수현, 전지현 하면 환장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기실, 김수현과 전지현이 중국에서 하는 광고는 고작 천원도 안하는 음료수 광고였다.
음료수가 시시하다는 것 보다도, 사실 중국에도 광고 시장은 엄청나고,
광고는 철철 넘치도록 많다.
그래도 내가 김수현 전지현을 발견한 것은 고작 이 음료수 광고에서 뿐이었다.
"중국사람들이 김수현, 전지현에 환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국인들만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뭐 중국사람들, 그렇게 김수현 전지현에 미쳐있지 않았다. .
우리만 과대망상 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산동성에서 만난 중국인 하나는 (버스에서 처음 만나는) 내게 점심을 공짜로 사주는 호기로움을 보이면서,
뭐 "산동성 하나만 해도 한국 인구의 두배는 되지 않느냐"고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었다.
소위 K-pop이란 것도 저질 대중문화 아닌가.
너절한 사랑타령과 말초적 음란문화가 대부분 아니던가.
외국에 자랑할 게 없어서 그런걸 한국문화라고 자랑하는가.
. . .덥다., 열 내지 말자.
그만 들어가서 발 닦고, 양말 런닝 빨고,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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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 시조는 이제 세간에 알려져서, 인터넷에서도 조회가 된다.
기억에서 멀어져 버렸던 내용을 정정한다.
고 1때 내가 외웠던 것과 동일하다.
대붕(大鵬)을 손으로 잡아 번개불에 구워 먹고
곤륜산(崑崙山) 옆에 끼고 북해(北海)를 건너 뛰니
태산(泰山)이 발길에 차여 왜깍대깍 하더라
"과장의 미학" 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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