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 사찰 석굴 기행 (38) 7/28 (월) -오대산의 사찰들 2

원 통 2015. 3. 9. 23:21

                                           

다음은 라후사이다.

 

이것은 현통사에서 내려다 본 라후사이다.

현통사 바로 옆에 있다

 

라후사는 이름이 특이하다.

아마도 부처님의 아들이신 라후라 존자에서 온 듯 하다.

아래는 다른 분의 설명이시다.

 

라후사는 개화헌불로 유명한 절이다. 현통사 동쪽에 있는 라후사는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사찰로 당나라 때에 창건되었으며, 명나라 흥치 5년(1492년)에 재건되었다. 천왕전, 문수전, 대불전, 장경각, 곁채, 배전, 랑실 등 사원의 건축 장식에서 소조 조각에 이르기까지 오대산 사찰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 할 수 있다. 라후사의 명물인 개화헌불(開花獻佛)은 꽃잎이 열리면 안에 있는 불상이 드러나도록 기계장치를 해놓은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로 보면 최첨단 기계공학이 가미된 불상이었던 셈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점에는 아쉽게도 공개되고 있지 않았다.

 

 절의 이름의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청나라 건륭제 임자년(1792년)에 라(罗)씨와 후(喉)씨 성을 가진 두 명의 장족인이 와서 절을 보수한 후 세상에 이름을 떨쳐 보고자 절의 이름을 라후사로 바꿨다는 설인데, 이 설명은 맞지 않다. 두 명의 장족인이 수리를 한 일이 있었던 없던지 간에, 라후사를 "라후"로 부르게 된 것을 설명하긴 하나 청건륭(清乾隆)년간이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라후사는 당대 초기에서 중기사이에 大华严寺의 12원 중 善住阁院이었다. 후당 명종(明宗)에서 말제(末帝)년간(926-936), 인도의 보화대사(普化大师)의 오대산 순례를 기록한 것에 말하길 "... 달콤한 하루, 선주각원에 올라, 라후에게 예를 다하고" 라는 기록으로, 라후(인도 아수라 중 하나래요)를 위해 전각을 짓고 제를 올렸음을 알수 있다.

 

북송때, 재상 장상영(张商英)이 제독 재임시 허둥(河东)의 사건을 조사하러 파견된 기간에, 세 차례 오대산에 왔고, "续清凉传"을 썼는데, 그가 쓰기를  “罗睺殿”과“罗喉足迹堂”에서 신등을 보고 공에 이르렀다고 했다. 또, 오대산 만불각에 현재 존재하길, 명만력 삼십 일년 세운 "五台山诸寺名"비에, 라후사란 이름이 있다. 그러므로, 청건륭때부터 라후사라 불렸다는 것은 맞지 않다.  

 

두 번째 설은 서방16조(西方十六祖)와 관련이 있다. 절내 청 강희 11년(1672) 2월 황제가 쓴 비문에서, "이 라후사는 문수가 나타나 살고 있는 곳의 근처이고, 마치 서방 16조에 귀의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唯兹罗睺寺者,其地近文殊现相处,其取义似皈依西方十六祖)"라고 하였다. 소위 서방16조라는 것은, 중국불교 선종을 확립한 고대 인도 불교 28조중의 제16조인 라후라다(罗睺罗多)를 가리킨다. 줄여서 말하면, 라후라존자는 기원 3세기의 사람이다. 라후사가 그를 따라 이름을 얻었는지 아닌지, 강희황제도 비슷하게 말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세 번째 설은 석가모니의 아들과 관련이 있다. 罗睺는 “罗睺罗”、“罗护罗”、“罗怙罗”라고도 쓰는데, 이 말은 월식(月蝕), 복장(覆障, 덮어 가리다), 장목(障目, 장애)이라는 뜻으로 흔히 장애로 의역되고 있다."佛本行集经·罗喉罗因缘品"과 같은 불교경전에 의하면 라후라는 석가모니가 속세에 있을 때 얻은 아들이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로, 고대 인도 북부의 카필라족장 슈도다나왕(净饭王)의 태자이며, 그의 어머니는 마야(摩耶)부인이고, 부인은 야쇼다라(耶输陀罗)이다. 석가모니는 29세에 인간세상의 생로병사와 윤회의 고통을 깨닫고, 궁궐을 버리고, 부모, 처자를 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6년간의 수도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도를 깨쳤고, 모든 법칙의 무상함과 연기의 모든 이치를 깨닿고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 전설에 의하면 라후라가 모의 배속에 있었던 기간은 6년이나 되고, 석가모니가 도를 깨우친 밤에 태어났다고 한다. 부처가 도를 통하는 6년째 되는 때이다.그는 마땅히 부친의 청으로 마가다국(摩伽陀国, 고대 인도의 불교가 시초한 왕국)으로 부터 돌아와 부모를 문안하고, 아들을 본 후 근심(출가 후 6년만에 출생)을 해결해야 했다. 이후 석가모니는 사리불(舍利弗: 석가의 제자)을 불러 그에게 출가를 권하게 하였고, 승려들 중 최초의 사미승이 되게 하였다. 그는 대목건련(大目犍连)으로 하여금 그의 머리를 깎게 하고, 사리불로 하여금 사미 십계명을 전하였다. 이렇게 불교의 사미계의 시작이 돼었다. 사미는 7세이상, 20세 이하로 10계명을 받은 출가한 남자를 일컿는다. 라후라는 정반왕의 왕손이며, 불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승단에서도 지위가 높았고, 항상 칭찬을 들었다. 불타는 그에게 특별한 엄격함을 요구하였고, 그에게 교육을 엄격하게 주관하였고, 정진수도하게 하였다. 그는 계율을 어기지 않고, 게으름을 멀리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불타가 찬탄하여 말하길, "나의 제자 중 라후라비구가 밀행제일(密行第一)이다"라 하였다. 그는 삼천 위의(威仪)와 팔만세행을 갖추어, 자기를 표현 한적이 없고, 말없이 일과 수행을 하였다. 후에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 중 제 일이 되었다. 라후라는 불교도가 공경하고 숭배하는 제 일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 라후라를 모시는 절이 있다. 오대산도 예외가 아니다. 오대산의 불교도들이 말하길, 라후라는 일찍이 신성함으로 남았고, 큰 족적을 남겼다. 이리하여, 라후라는 산을 순례하는 불교도들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 되었다.

 

 

 

라후사 현판이다.

 

 

만주 글씨가 쓰여져 있다. 이름만 특이한 것이 아니다.

물론 청나라 때 스여진 것이겠지만. . . .

절은 이런 것들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모로 특이한 절이다.

 

 

천왕전. . .즉 사천왕을 을 모신 것이다.

대개는 사천왕문이 있는데, 여기는 문가지고는 안된다고 하고, 사천왕에 대해서

전각을 세운 것이다.

사천왕에 대한 전각이 있는 것도 ?또한 특이하다.

사천왕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다 올릴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림 또한 특이하다. 티베트 풍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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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원조사로 올라간다.

 

중국의 집들에는 입구로 들어서면 이런 가림벽이 있다.

절에도 있다. 이게 무슨 이름이 있던데, 지금은 모르겟고,

하여튼 이 가림벽의 장식 들이 참 좋다.

중국인들은 이런 것들을 즐기는 것이다.

 

 

 

 

사찰 경내가 고즈녁하다.

여기만해도 지대가 제법 높고, 아주 유명한 절은 아니다 싶기에 사람들이 비교적 다른 곳보다는 적다.

 

 

 

 

 

 

그래도 만만한 절이 아니다

대웅전의 크기만 보아도 그렇다.

정말정말 오대산에는 절이 많고, 다 크고 웅장하다.

불교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오대산에서 매일매일 살아도 불만이 없겠다. . . . . .

 

 

그림이 좋다. (벽화이다). 8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개만 올린다

티베트 풍의 냄새가 난다.

보살님들의 에스라인. . . ㅋㅋ. . . .

 

 

 

벽화인데, 채지충의 그림이다.

자비희사를 표시한 것이다.

채지충의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팔렸는데,

두어권 가지고 있다.

한번 보고 말 것이 아니라, 자꾸 여러번 보는 것이 좋다.

그림으로 압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에 상당히 여러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한번은 채지충 그림책을 헌책으로 세권인가 샀는데,

거기 전 소유자인 검사님의도장이 모두 찍혀있었다.

그런데 검사라면 공포의 대상이고, 더우기 공안검사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전체 검사님들께는 미안 !!)

야 검사들도 이런걸 보는구나 싶었다. ㅎㅎㅎㅎ. . . .

  

 

 

 

 

 

 

 

지붕의 장식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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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대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보살정이다.

 

보살정 올라가는 길

 

 

보살정에서 내려다 본 오대산지역 (대회사묘군) 전경. . .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금탑 속의 부처님  그리고 석대. 용피석대.

탑 속에 부처님께서 들어앉아 계시는 것은 아마도 대표적으로 법화경에 나오는내용일텐데,. . .

 

 

대비주와

이분을 포대화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 . . .

 

 

 

 

노지심이  산문에서 연무를 하시던 옛터랍니다.

그런데, 노지심이 역사적인 인물이던가?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이지요?

그것도 그러거니와, 노지심은 지난번 송나라 서울인 카이펑에 있는 상국사의 큰 느티나무를 뽑았다고 했었는데,

그 옛날에 오대산까지오셨었던가?

 

암튼, 따지지 마시고. . . .

그저 관광객은 여기서 돈을 내고

재미있게 즐기다가 가시면 되는 겁니다.

 

 

 

 

 

 

노지심은 힘이 장사인데, 스님이시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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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선재동으로올라갑니다.

날씨는 더운데, 계단으로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도 이름이 선재동인데, 안가볼 수 없지요. 

선재의료봉사회 창립회원이자, 최장수회원이신 (같은 말인가?)  이몸이. . . .

 

 

 

 

 

잠깐 땀을 식히고. . . .

 

내부는 공사중. . .

 

 

이 계단을 쓰시는 스님이 계시다. 그러면서 탁발(동냥)을 한다.

스님 아닌 분도 계시다. 무척 더운 날씨이다. 몇 시간동안이나 하고 게신지 모르겠다.

물론, 중은 거지이다. 빌어먹는 사람이다.

그러나 빌어 먹더라도 빌어먹는 값은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단을 쓸어가며 탁발을 하는 사람들이 여렷 있다.

물론 그 중에는 거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지라도, 거저놀고먹는 거지가 아니지 않는가.

거저 놀고먹는 스님들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거지이건 스님이건 공돈은  안 받겠다는 그분들의 태도.

정말 감격스럽다.  

이 더운 오뉴월에.

 

 

 

선재동을 지나서 산 곡대기에는 대리정이있다.

대리정은 상당히 높은 곳이다.

칠부능선 까지 갔지만. 시간도 늦고(점심도 안 먹고), 꼭 거기가지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싶어서  내려왔다.

오전에 많은 절들을 보았기에 일단은 좀 쉬고,

요기를 좀 하는 것이 우선이다.

 

 

멀리서 본 대리정.

케이블카도 있다고 한다.

 

내려와서 량피(凉皮)를 먹었다.

량피는 이 지역에서 가장 흔피 볼수있는 street food 인데,

흰 국수 반죽을 넓게 펴서 만들어서 준비해 놓았다가,

(그래서 시원하다 찬음식이다- 거죽 껍데기 같은 모양이다)

먹을 때에는  국수가닥 모양으로 잘라서 

적당히 간을 맞춘 국물에 말아서 준다.

 

 

수상사의 입구이다.

멀리 셔틀버스가보인다.

 

수상사도 상당히 큰 절이다.

국가중점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사진은 많지만 생략하고,

향로를 받치고 있는 장사 사진만 하나  올리자.

 

 

걸어 내려와서 보화사를 구경하고, 버스 터미날에서 다으날 차편을 알아보고자 한다.

 

 내려오는 길에 거사림 간판도보인다.

 

다음 이야기  (보화사, 용천사 등. . .)는  아무래도 양이 넘쳐서 다음 편으로 넘겨야 하겠다.

 

 

 

 

 

 

 

 

 

 

 

 

 

 

 

 

 

ㅡ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