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오대산이 한국에만 있는 줄로 알았다. 중학교때는.
아니, 20살이 넘어서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오대산이 그게 아니라는 것은 불교 선종 책에 나오는 문수보살 이야기들을 접하고나서부터인 듯하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로 유명하다.
특히 무착 문희선사가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갔다가,
웬 동자승한테 길을 묻고, 다시 웬 노인한테 길을 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이 문수보살의 화현이었다는 이야기,
또 무착문희 선사가 죽을 끓이다가 죽이 끓어서 표면에 증기방울이 맺혀서 올라오니까
고것들을 죽 끓이는 주걱으로 톡톡 뚜드려 터트리면서
-마치 문수보살님 대갈님을 뚜드리듯이 하면서-
"문수면 네 문수지 내 문수냐" 하는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무리 권위있고 세도가 높은 문수보살이라도, 그것은 관념이고 허상이고,
남들이 떠드는 문수가 아무리 대단해도
"나에게 있어서의 문수가 무엇인가"가 오로지 중요하다는 말씀이렸다.
두번째로 내게 오대산을 기억하게 해 준것은, 일본의 카마타 시게오 님이 쓰시고, 장휘옥님이 번역하신 "기신론이야기" 책을 읽으면서이다.
기신론의 여러 사상들을 중국불교 역사상의 여러 훌륭하신 분들의 개인 이야기와 엮어서 쓰신 글들이었는데, 아주 재미가 있었고, 한생각 해주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지금도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카마타 선생도 (일본에서 화엄학의 대표적인 학자이시다) 무척이나 여행을 좋아하셧던 분 같다. 그 옛날에(모택동 시절에. . .) 이렇게 중국의 곳곳을 혼자 샅샅이 찾아 다니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 . .
새번째로 내가 오대산을 흠모하게 된 것은 바로 중국 화엄의 제 5대조 청량 징관스님이시다.
실로 화엄종은 청량 징관스님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화엄학도 고스란히 징관스님의 것이다.
대교과에서 배우는 것이 징관 스님의 "화엄경 소초"이다.
나는 오랫동안 청량 징관스님의 이법계, 사법계,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 . .그런 말들을 뇌리에 외이면서 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신께서 주석하시고 사상을 내셨던 바로그 청량산에 가보고싶었던 것이다.
당시는(20년전) 내가 중국에 들어가서 거기를 가볼 수잇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다.
중국은 공산회되어서 누구도 못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여행자유화도 안 되고,
된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불가능하던 시절이었다.
가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가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청량이라는 말만 들어도 시원하다.
오대산이 시원해서 (정말로 시원하다. 산이 깊으니까. . .모기가 없다)
그래서 청량산이고, 그래서 징관스님이 청량 징관이신데. . .
원주 안동 가는 기차역도 청량리역이다.
내고향 강원도 춘천쪽 가는 곳도 청량리 역이다.
청량리 역에서 대학 때는 엠티도 많이 갔었지. . .등산도 많이 가고. . .
아, I love CheongNyang!!
청량리 근처에 과거에 청량사라는 절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한양 동쩍에 절이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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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로 내게 오대산을 아주, 매우 강하게 각인시켜 주신 것은 바로, 허운 노스님이시다. 허운 노스님은 대 선사로, 청말부터 모택동 시절까지 사셨던(1840-1959) 중국 전통불교의 마지막 횃불이었다.
119세까지 사셨다는 뜻이져. . . .
그분의 업적이야 너무 많으니까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지만,
1. 마지막 중국 선종의 전통을 끝가지 지켜내셨고,
2. 공산화가 되고 나서도 대만이나 홍콩으로 탈출하지 않으셔서 대륙불교의 부활을 이룩하셨고,
3. 몸이 허약해서 절에 들어갔지만, 120살까지 사시는 정말 초인적인 행적을 보이셨고,
4. 상해 앞바다 보타낙가산에서부터 오대산까지 (약 5천 Km? 한반도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길이의 다섯배?) 삼보일배로 순례를 하면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셨고,
5. 운남성에 거대사찰을 많이 일으켜서 남방 불교의 부흥을 일으키신 독보적인 존재시다.
이정도 얘기하면 됐을려나. . .?
虛雲, 운허스님 허짜, 구름 운짜. 중국발음으로는 쉬윈,
책이 있는데, 동국대학에서 강의하시는 정운 스님께서 허운스님의 자취를 따라 기행하신 책이다. 제목은 "중국 근현대 불교의 선지식 허운"
나는 이 책을 보고, 책을 쓰신 정운스님게 마음 속으로 여러번 감사 드렸고,
허운 스님에 대한 존경심이야 이루 말할 수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허운 스님이 몇년 걸려서 목숨을 걸고 삼보일배로 순례하신 오대산이란 데는 어던 데인가 정말 가보고 싶어졌다.
허운 스님은 삼보일배로 한반도의 다섯배 거리를 가셨는데,
나는 버스타고, 기차타고 비행기타고 거기한번 못 가보랴 싶었다.
스님은 삼보일배도 하는데, 그걸 어디인들 걸어서는 못 가겠느냐 싶었다.
그럴 생각으로, 그냥 맨몸으로 부딧칠 생각으로 오대산에 간 것이다.
허운 스님은 돈도,먹을 것도, 잘 곳도 없는 데도 갔다.
나는 그래도 국수 갑, 만두 값은 있고,뻐스비는 있고, 유스호스텔도 있지 않느냐.
오대산에 가 보는 것. 그리고 용문, 윈강, 돈황석굴을 보는 것. 이번 여행애서 가장 중요한 목적 이었다.
오늘 이제 하루종일 오대산을 샅샅이 훑어보자.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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