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오토릭샤를 타고 가야로 나왔다. 거기에서 왕사성 가는 버스가 있다. 80 KM 인도거리 80키로면 버스로는 세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왕사성은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 국의 수도 라지그리하를 말한다. 부처님은 시골출신이다. 히말라야 산록의 작은 나라 카필라성 출신.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는 마가다 국, 그리고 코살라국.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마가다 국의 수도인 왕사성, 죽 라지그리하에는 죽림정사를, 그리고 코살라 국의 수도인 슈라바스티에는 기원정사를 세워 운영하신다.
깨닫고 나서 바로 가장 정치의 중심지로 가서, 당시 가장 강력한 군주인 빔비사라 왕의 귀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마가다 국의 국교로서 불교를 키우신다. 그리고 코살라 국의 국교로서 불교를 키우신다.
마가다 국 왕궁이 있던 자리. 숙소 바로 앞이었다.
물론 불교는 통일 인도인 아쇼카왕의 마우리아 왕조의 국교였다. 그리고 우리나 신라, 백제의국교였고, 통일신라의 국교였다. 그리고 물론 고려왕조의 국교였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국가 형성기인 나라시대, 그 이은 헤이안 시대, 카마쿠라 시대, 거의 전 일본 역사를 통틀어서 국교로서 통치이념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문화가 발달했던 당나라, 수나라의 국교였다.
적어도 위대한 사상이라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거대한 한 국가의 통치이념으로서 삼을 만한 사상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당대에, 불과 십년만에 전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 코살라 국의 통치이념으로 불교를 성장시킨 것이다. 위대하지 않은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 다음으로 오래 머무신 곳은,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이시다. 나는 지금 그곳으로 간다.
기원정사나, 죽림정사나 모두 왕궁과 거의 불과 지척의 거리에 잇다. 즉 부처님께서 계셨던 절은 산속이 아니라, 바로 왕궁 근처에 있었다는 말이다.
왕사성 근처에는 영축산이 있다. 줄여서 영산. 혹은 기사굴산이라고도 한다. 당시 인도말로 기차꿋따 산이었기 때문이다. 영축산은 특히 "이 곳에서 법화경이 설해졌다"고 해서 더욱 유명하다.
국악으로 유명한 영산회상은 이 "영축산법회모임"이란 뜻이다. 그 밖에 제 1차 불전결집이 행해졌다고 하는 소위 칠엽굴도 그냥 이 왕사성 시내에 있다.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빔비사라왕 역시 아들 아사세왕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감옥에 갖혀 있었다. 그러나 훗날 아사세왕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처님깨 귀의한다.
빔비사라왕은 화자성으로 천도를 계획했다. 화자성(파탈리푸트라, 지금의 빠뜨나 Patna)으로의 천도는 그 다음에 이루어져서 아쇼카왕이후까지 오랫동안 인도의 수도가 된다.
왕사성은 라쟈그리하였는데, 지금 이름은 라지기르이다. (Rajgir).
---------------------------------------------- 버스로 몇시간 걸려서 라지기르에 도착했다.
라지기르 버스정류장 매우 허름하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스리랑카 temple 을 찾았으나 너무 인기가 좋아서 방이 없단다. 오전인데도 벌써. 이웃해 있는 벵골 temple 에서 다행히 숙소를 구했다. 이곳은 전망도 좋고, 정갈하다. 비싸지도 않다. 다만 조금 외져서 마음이 아주 편치는 않았는데, 사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바라나시 사건 이후, 어디른 가거나 경게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또 그정도 경계심은 필요한 것이다.
이 숙소가 왕사성터 바로 코앞에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죽림정사 터는 거기서 몇백미터 이래에 있다. (불과 몇백미터)
벵골 템플 이건물 이층에서 묵었다. 노란 첨탑 뒤가 내방.
------------------------------------------ 라지기르 관광은 볼거리가 대충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동안 마차를 대절한다. 숙소 300루피, 마차 300루피 했던 것 같다. (각각 만원 이하)
스님이 마당에서 노닥거리던 마부를 소개시켜 주었다. 마부는 어린 놈인데, 신나게 달린다. 연신 말을 때려 가면서. 매맞는 말이 불쌍했지만. 어린? 젊은? 마부는 손님을 태우고 달려 가는 것이 그저 신난다.
연신 채칙질을 해 댄다. 그렇게 말을 타고 영취산, 칠엽굴을 갔다 왔다.
영취산 가는 길은 제법 여러가지로 꾸려 놓았다.
영취산 올라가는 길. 땡볕에 거지들이 앉아있다. 어린 여자아이를 앉고 있는 거지가 가장 불쌍하다.
그리고 원숭이도. . . .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사세한테 잡혀 잇었다는 감옥터라는 데도 있다.
멀리 뒤로 영취산이 보인다. (흰 건물 있는 곳)
영취산에는 일본 사람들이 케이블카도 만들어 놓고, 무슨 위령탑도 만들어 놓았다. 영취산하고, 히로시마 위령탑하고 무슨 관계람.
죽림정사 터는 따로 갈 것도 없다. 그냥 큰 길 옆에 허허벌판이 거기라는 거다. 왕사성 터도 따로 갈 것도 없다. 그저 숙소 앞에 허허벌판이 왕사성 터라는 거다.
피곤했으나 날란다를 보는일이 남았다. 날란다는 여기서 12 km. 무엇보다도, 피곤보다도, 갔다 오면 너무 어둡지 않을까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피곤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병나면 안 되는데 그런 걱정도 했다. 어쩌지. . . . .
그래도 서너시간이 남는데, 날란다를 안 가봤다면 나중에 많이 후회될 것 같았다. . . . . 그래, 일단 가는 데까지 가 보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다행히 버스를 바로 탔다. 물론 무지하게 낡은 버스를. 오 루피인가 준것 같다.
내리는 것이 문제. 어디서 내리나.
거리르 보고, 12km이라니까 한 30분 걸리겠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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