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만주방랑 12. - 7/5 화요일 용정. 연길.

원 통 2016. 8. 6. 22:04

 

만주방랑 12. - 7/5  화요일  용정. 연길.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나는  고1때부터 흥사난 아카데미에 나갔는데,  그때 선배님들이 가르쳐 주시던 노래가 선구자이다.

우리 생각에 당시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인 우리  흥사단에서  선배님들 말고는 이노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이노래를 목청높여 부르며  우리민족 사랑의 긍지를 드높었었다.

사십 몇년전 이야기다.

이 노래가 온국민의 노래로 유명해 진 것은 세월이 훨씬  지난 후였다.   

오늘은 그 일송정  푸른솔의 고장. 용두레 우물의 고장. 용정으로 간다.

백하 역에서 아침 8시 40분 기차다.

두시간 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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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호스텔에서는 아침에 이렇게 간편식을 제공한다. 20 위안, 

맛  있고 배부르다.

 

 

택시를 타고 (10위안)  백하역에 도착

여기서 8시 42분 기차를 타고 간다.

 

 

 

역시 텅텅 비었다.

두시간을 가는데토 침대 칸을 끊었다.

작년에 일반 칸을 끊었다가 너무 시끄럽고 혼잡해서 고생을 해서.

 

 

놃고 넓은 들판과

 

 

산들.

 

 

여기는 화룡이다.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 독립군이 싸우던 유명한 데다.

또 옛날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 . .

중 3때 교통사고가 나 가지고, 6개월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에

(그때는 성모병원이 명동성당 앞에 있었다. 성당 앞 오른쪽 큰 건물이 성모병원이었다)

아버지에게  소설책을 사다 달라고 해서 읽었는데, 

당시 안수길 선생이 쓴 "북간도"가 제법 유명했다. 

나로서는 거의 최초로 자세하게 읽은 장편소설이었고, 평생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그 무대가 바로여기 연길, 용정, 화룡이다. 

그래서 이 고장이 남달리 더욱 와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그후 민족주의 사상이 강했던 학생이 되었고) 

 

 나의 아버지 이야기인데. . . . .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 말이 적으시고 숫기(?)가 없으셨다.

그렇다기 보다는 (당시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셧듯이)

자식들에 대한 잔 정을 잘 표현하지 못 하셨다.  

 

아버지는 중학교  시절에   할아버지와 (물론 온 식구가. 아버지는 장남이시다)  만주에서 몇년을 사셨다. 

그렇기때문에 아버지가 느끼는 만주, 연길,  심양  등에 대한 정서는 남다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사실을 훨씬 나중에야 생각했고,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가 만주에 대한 민족소설 북간도를 열심히 읽는 것에 대해서 무척 대견해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시고 싶으신 말도 많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전혀 표현을 안 하셨다. 못 하셨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모두 참 순진하셨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본과 3학년때.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내게 말로 뭘 가르쳐 주신것은 거의 없는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의 훌륭한 점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말로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과 태도와 마음씀으로 되는 것이다. 

 

내가 인생살이에 한동안 괴로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럴때면 내가 꿈을 꾸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내가 울거나, 혹은 울음을 참거나  하면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계시곤 했다.

 

정말로 괴롭고 힘들고  그럴 때 의존할 수 있는 최후의 믿음터는 아버지구나 생각했다. 

정작 아버지는  당신이 살아계실때에 나에게 교육이랍시고 뭘 가르치신다거나,

혹은 널 사랑한다거나 이런말씀을 하신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아버지가 계실 것이다.

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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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화룡(和龍)인데

기차를 타고지나친다.

원래는 여기서 내려서 청산리까지는 못 가더라도 (버스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단다)

화룡 시내라도 한번 구경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로 화룡 보고, 용정  보고, 연길  들어갈려면 연길에 너무 늦게 들어간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보다도,

출발 전에 친구들이 "너 기가면 위험하다. 북한 놈들이  납치해 간단다" 는 애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로 조심해야겠다는생각이 들어서

사람이 많지 않은  교통이 나쁜 오지에  가는 일은 좀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무척 조심했다)

그래서 화룡에는 내리지 않고 사진 한장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기차를 타고서, 차장한테, "화룡에서 안 내리고 용정까지 가겠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했는데,

거의 화룡 다 올때 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차장이 깝빡 했나, 혹은 그렇게까지  친절하게는 안 해주나

생각했다.

그런데, 화룡역 가까이 가더니, 여승무원이 와서 용정까지 연장 표를 끊어주는데,

뭐라고 한참 하는데 못알다 듣다가 알고보니,

"여기 침태칸에서 연장하면 60위안을 더 내야한다. 그런데, 기차도 텅텅 비었고, 30분만 더 가면 되는데,

저쪽 일반좌석으로가서 옮겨 앉으면 15위안을 더내면 된다 60위안 낼래, 15위안 낼래?"

그 소리였다.

야, 참 중국 사람들 고맙네. . .말도 안 통하는 한국인에게  이렇게까지. . . . .

 

 

 

 

 

 

 

 

 

기차가 용정 가까이 가면서  "해란강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천만 나오면 찍어서 개천 사진 많이 찍었다.

그러다가 큰 강이 떡 하니 나오길래, 이 이게 해란강이구나를 알았다.

어차피 용정에서 두어시간만에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다 돌아볼 수는 없다.

 

 

 

 

 

 

 

 

용정 역에 도착.

 

간판의 한글 들이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한산한 거리.

 

그러나 택시운전수와 우리말이 안 통하는 것을 겪었다.

윤동주가 다녔다는, 그리고 수많은 민족의인재들을 길러냈다는  (문동환 목사  등등. . .)  대성중학부터

찾아봐야 한다.

택시를 타고 손쉽게 왔다.

알고보니, 대성중학은 당시 자생적인 여러개의 학교가 통합된 것이었다.

지금은 교명이 바뀌어서 용정중학이다. (물론 중고등학교 과정)

용정에도 한족 학교는 많다, 여기는 조선족 학교라는거다.

학교 안에 대성중학 기념관이 있다.

과거의 교사 건물이다 .

 

 

 

 

 

 

 

 

 

 

 

 

 

 

 

 

 

 

 

자,이제 용두레 우물을 찾아 나선다.

택시를 잡아 물어보니, 운전수가 모른다.

어찌어찌 얘기하니까 안다고 타라고 해서 얼마냐고 햇더니 20위안이라고.

그래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것 같아서, 일단, 이 사람이 모르는구나  치고 (가이드 북에 멀지 않다고 나와 있었다)

좀 걸어 내려가다보니까, 이내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옳지, 바로 여기구나.

음. 일이 잘 풀리네.

 

 

 

 

 

 

공원에서 한가하게 사진찍고 놀고 쉬다가. . .

점심을 먹고

(여기 오니까 식당에 국수보다 밥이 흔하다.

그리고 식당도 중국식 찬팅이아니고, 한국식이다. 혼자서  먹는 스타일의)

이동네는 그래서 밥과 국이라고 해서, 탕반 (湯飯)  이라고한다.

그래도 역시 식당에서 떠드는 사람은 중국 사람들이다. 식당 아줌마도. . .

조선족들 그렇게 흔치 않다.

 

이제  연길로 이동한다.

거의 시내버스 수준이다. 30분 이내

 

 

 

연길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 .

 

 

버스 터미날.

사람들 말로는 연길도 무척 커 졌다고.

과거에 순진했던 시절의 연길이 아니다.

 

 

 

한글 간판들이 반갑기는 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이아니라, 억지로 만든 번역투의 한글들.

실제로는 중국말글을 더 사용한다는거다.

 

 

연변대학 부속병원,.

오늘, 내일 이틀 묵고자 하는 곳은 이정민박이란 곳인데,

수상시장  옆 "삼꽃거리"는 것에 있다.

연길 수상시장이  유명하니까 찾기는 쉽다.

연길 중심교회 바로 앞이다.

 

시장 옆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주로 밤시간에 이용하는지

노래방이 무척 많은 곳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방이 모자르다고 아들 방을 내어 준다.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시내 구경.

강 옆인데, 지선이다. 이름은 연길천이다. 실제 큰 강은 저아래에 있다.

 

시민 공원의 솔밭에서는  노래판, 춤판이 벌어져 잇다.

여기; 노래는 완전 한국 노래이다. 니나노, 닐리리야. . . .

노는 것도 완전 한국식이다. 중국식이 아니다.

아마도 조선족인 듯하다.

 

 

 

 

시민공원을 가로질러 끝에는 애국열사 묘원이 있다.

실제로 항일  전투를 해서 무수히 죽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중국인들은 자기들 조상이란다. 조선족도 중국인이라고.

 

 

 

내려오는길. 천하여장군이 희화적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 . .

 

 

연길 중심교회- 크다.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여기 장로이시다.

아줌마는 전도사이고.

 

 

퇴근길에 한잔 하고 싶은 곳들.

 

 

수상시장인데, 장이 새벽에 선다.

지금은 문 닫았다.

 

시민공원 놀이터.

 

 

저녁 시간에 맞추어 민박으로돌아왔다.

주인아줌마가 카레를 끓이셨다.

물을 많이 부어 싱겁다고 자꾸 그러시는데, 아니라고 했다.

 

물론 푸성귀도 있다.

반갑다 이렇게 한국 식으로 편히 먹는 것이.

내일은 연변대학 등 시내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