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일박
서울 갔다가 즐거운 얼굴 벗들 동료 선배들을 만나고 원주로 내려오는 기차.
밤 9시3분 청량리발 부산행 중앙선.
그날따라 기차가 엄청 느리게 느껴졌다. 기차에서 자면 밤잠을 못들기에 가능하면 안 자려고 했다.
양평 용문을 지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안 자려고 애쓰지?"
이런 느낌이 들면서 눈을 감고 좀 비몽사몽 했다.
그러다가 갑짜기 주위가 약간 두런주런 해지는 듯 했는데 창밖을 보니 원주역 간판이 보이고 기차는 출발하고 있었다.
아니..ㅡ 기차역 놓쳤네 !!
아ㅡ 내가 좀처럼 이런 실수는 안 저지르는데...
그럼 다음 역은? 제천?
제천에 떨어지면 ? 거의 11시.
버스? 없지. 기차? .. 없네...
그럼 제천에서 묵어야 하네?
올라오는 기차는 ?
새벽 3시 59분. . ..
황당...
원주역에서는 그 흔한 안내방송도 안했는가? 했겠지. 거참 이상하네.
원주역에서 그 많은 사람이 내렸을텐데도 몰랐단 말인가...
아ㅡ 나도 늙었네.ㅡ
제천역을 나와 추운 거리를 헤멘다.
모텔은 죽어도 가기 싫다.
어디 "싸우나"라도 좀 있으면
이 참에 좀 지질까.
아, 이동네는 싸우나도 없네...
추운 거리를 그냥 걷는다. 무슨 대책도 없다. 모텔을 가야하는건가?
그런거야?
그런데 언뜻 게스트하우스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잇? 게하?
저거 내국인도 되겠지?
가서 문을 두드려보니 잠겨있고 안에 사람이 없다.
크게도 소리쳐 보았다. 그래도 없다.
간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화번호가 있었다.
저거 070인데 되려나?
전화해 보니 원 녀석이 받는다.
인터넷으로 예약 해느냐고 한다. 인터넷 예약고객만 받는단다.
잘났어.
지금 문앞인데 원주역을 지나치고...뭐 하면서 일단 문이라도 좀 열어주시고...
했더니 현찰은 있냔다.
그래 있다 이놈아.
크게 인심 쓰듯이 도어록 번호를 가르쳐 준다.
전화로 지령을 내리는데, 2층 올라가서 잘 자고 돈은 침대에 놓고 가란다. 샤워실도 있단다.
2층을 올라가 보니 코딱지만한 방에 나무 2층 침대 하나 놓여있다. 그런 방이 4개.
여성용 쪽은 안 봤다.
투숙객은 아무도 없다.
이런데 여자들 왔다가는 큰일 나겠다.
한 만원 하면 딱 맞겠다 싶은데 얼마냐고 물으니 2만5천원이란다. 침대하나에 너무 비싼거 아니냐 했더니 주말엔 3만원이란다.
"2만5천원에 모텔엔 못 가실걸요? "
더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본전 뽑으려고 할 필요도 없는 샤워도 하고 전기장판 입빠이로 올리고 잤다. 새벽같이 나가면 추우니까...
이럭저럭 하다가 아침이 되었다.
근데 현찰이 5만원짜리인데 그걸 어떻게바꾸나? 문이 한번 잠기면 안 열리는데 번호를 모르는데...새벽에는 CU도 문을 안 열텐데....
음 배고프네...
1층에 보니 토스트가 있다.
주스 계란도 있고.
이런건 free지? 그나마 다행이네...
토스트를 먹고..
5만원권을 어떻게 바꾼다?
천상 문을 열어놓고 가는수 밖에 없겠다.
7시반경 문이 안 닫히게 해 놓고 거리로 나가보니 황량하다.
좀 찾아보니 다행히도 저 멀리 쎄분11이 보인다.
너무 멀리가면 안되는데...
그래도 가니 여사님께서 청소하고 계신다.
돈빼는기계 어딨어요?
여긴 없는데요.
엥?
저기, 오만원 짜리좀 바꿀수 있을까요?
최대한 공손하게.
아. 여사님이 바꾸어 주신다.
너무 고맙다.
정말 너무 고맙네요.
아니예요.
문을 열어둔 채 왔으니 황급히 되돌아오는데
여사님이 고마워서 "주스"라도 사드릴껄 하는 생각이 났다.
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왔다.
나는 순간적인 행동에 약하다. 나중에 "...할껄" 그런다.
돌아와서 가방 창기고 침대에 얌전히 5천원짜리 다섯장 놓고 주인 없는집 문을 나서서
제천역으로 향했다.
그 아줌마가, 아니 여사님이 고마워서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