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원주일기 5

원 통 2020. 2. 26. 15:06

원주일기 5.

기차소리가 좋아서 이 집을 선뜻 결정했다.
집인지,방인지.
코딱지만한 가스렌지대와 싱크대 그게 주방이다.
그리고 역시 코딱지만한 방 두개.
사실 이 세 공간을 그냥 트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거야 집주인 일이고.
수십년된 잡지, 문고판 들은 버리기 싫어서 박스 채로 추녀 밑에 쌓아 두었다.
.
방세(집세?)가 싸기도 하지만,그래도 나는 기차길옆 오막살이가 너무 낭만적이라서 선뜻 여기로 결정했다.
중앙선 밤기차는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 이나 "바람에 실려" 노래를 연상케 한다.
그 분위기 있는 중앙선 기차가 내 문밖을 수십차례 지나가고
나는 기차소리를 수십차례 들으며 산다.
정말 낭만 그 자체이다.
게다가 비라도 올짝시면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추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즐길 수 있다.
비오는 날 원주천에서 보는 안개비는 정말 죽인다.
.
하지만 여기서 낭만을 누리는 데는 나름 댓가가 든다.
집이 좁고 낡았음은 물론.ㅡ목조 현관 바닥에서는 늘 삐걱 소리가 난다.ㅡ
처음에는 쥐와 싸워야 했다. 어느날 쥐님이 20키로 쌀푸대를 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끈끈이를 6군데 놓아서 새벽에 잡혔는데 이놈은 끈끈이도 끊고 달아났다. 대단한 놈이다.
다음으로는 쥐 나올 만한 구멍을 모조리 찾아서 막아놓고 문단속도 늘 한다. 그러니 쥐가 나오지는 않는데
그러나 새벽 너댓시면 요놈이 꼭 깨어서 사각댄다.
얼마나 지척인지 가끔 놀란다.
여기서 살기 위해서는 미물과함께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따지고 보면 쥐가 그닥 미물도 아니다.
쥐 문제는 얼추 해결되었다고 보는데, 봄이 되니 자고 나면 뭔가 물것이 있다.모기나 벼룩, 이도 아니다.
관찰해 보니 아주 작은 개미들이 줄을 서 있다. 내가 방안에 먹을 것들을 흘려 놓는 것이다.
황급히 치우고, 개미방어제를 친다.
문설주가 낮아서 가끔 머리를 박기도 한다. 뭐 이젠 많이 숙달 되었지만.
기차길 옆의 낭만도 좋지만 낭만을 누리기에는 여러가지 댓가가 따른다.

그래도 저녁 먹고 원주천변에서 쉬는 일은 값을 쳐 줄만 하다.
가끔씩 철교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꼭 맞는건 아니지만, 옛날에 막걸리 마시고 부르던 김민기 노래의 장면이 실연된다. 이건 현실이다.
가상이 아니다.

"높다란 철교 위론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고
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