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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배낭여행 25- 2월 13일 월요일, 제 20일 -델리, 마지막 날 귀국

원 통 2019. 3. 13. 11:52
인도배낭여행 25- 2월 13일 월요일, 제 20일 -델리, 마지막 날 귀국. |기본게시판
긍정||조회 2|추천 0|2012.03.18. 20:15http://cafe.daum.net/dmt33/2tPZ/1296 

 

 

2월13일 월요일, 제 20일, 마지막날

 

 

 

아침에 델리 역에 도착했다. 다들 우수수 내려서 나도 종점이라고 생각하고 내렸다. 뉴델리역은 한정거장 더 가야하는데, 델리역이 종점인줄 알고 내렸다. 승객들 거의다가 내리니까.

그런데 사실 나는 뉴델리 역에서 내려야 했던 것이다. 왜냐.

 

 

 

 

 

밤에 귀국하려면 공항 기차airport express를 타야하는데, 그게 뉴델리 역에서 타야한다. 결국 그러면 짐(무겁고 큰 배낭)을 뉴델리 역 cloak room 에 맡겨야 하는데, 거기서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또 어차피 (라면 하나를 먹으려고 해도) 뉴델리 배낭촌인 빠하르간즈를 가야 하는데, 그것도 뉴델리 역전 동네이다.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뉴델리 역전으로 간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델리역에 짐을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저녁때 한번 더 수고를 하는 수 밖에 없다.

 

 

델리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꾸듭 미나르를 가 보는 것이다.

 

구뜹 미나르는 델리술탄 왕조가 세운 것이다

즉, 델리가 전체 인도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노예왕조(노예 출신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부터이다.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해당한다. 이 노예왕조는 강력한 이슬람식 통치를 시행하였다. 이슬람 지배가 본격적으로되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래서 이 왕조를 델리술탄왕조라고 한다. 댈리에서는 가장 유명한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즉, 델리 관광 일번지가 이 곳이다.

 

old Delhi 근처 Red Fort는 무굴제국의 샤자한(따-즈 마흐알을 세운)이 세운것으로서, 델리술탄왕조와는 관계가 없다. 이 구뜹 미나르 승전탑은 델리의 남쪽 끝에 있다. 꾸뜹은 노예왕조의 건설자 이름, 미나르는 큰탑.

 

아침 일찍 델리 역에 내렸기 때문에 춥다. 어디가서 시간을 때운다? 시간을 때울 데도 없다. 감기가 더해지면 어떻허나. . . .역시 처량한 광수.

지하철 역에서 어슬렁 거리며 시간을 때워본다, 그래도 역시 춥다. 새벽 여섯시에 내렸는데

(그 기차는 연착도 안 한다. 라쟈스탄 쪽은 기차시간이 정확하다) 어떻게 9-10시까지 지내나. . . .어찌어찌 해서 시간을 때우고 꾸듭 미나르를 들어갔다.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많다. 특히 유럽인 노인들이 많은데, 프랑스 단체 관광객이 많다. 왜 그런지,

꾸듭 미나르는 델리나 인도에 왔다면 한번은 볼만 했다. 역시 나는 유적물들 위로 나르는 새떼들이 보기 좋았다.

아침이 이르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역시 추웠다.  

 

 

 

 

 

 

 

 

 

 

 

 

 

 

 

 

 

 

지하철을 타고(subway 아니다. metro다. subway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빠간으로 왔다.

 

 

 

 

아, 중간에 내려서   Gate of Indis 를 보기로 했다.

그 중앙광장 길은 너무 크고 길어서 걸어서는 못 다닌다.

멀리서 보고 사진만찍었다.

더 가가이 가서 볼 것도 없다.

거기는 국회의사당도 크고 웅장하다.

늘 꾀죄죄한 인도만 보다가 여기와 보니 인게 인도인가 싶다

그러니역시 통일 제국의 위용과 권위를 위해서는 이런게 필요하겠다 싶다.

그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인도인이라는 자부심과 애국심과 도, 국민국가릉 위한 단결과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인도 온 다음날 독립기념 퍼레이드를 했다고 한 곳이다. 

그때 못들어왔는데, 

이제 지하철에서 내려, 사진이나 두어장 찍고 간다. 

그래, 잘 있어라. 

 

 

 

 

 

 

 

 

국회의사당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국립박물관 뭐 그런 건물 들이다.

국립박물관에는 볼거리들이 많다는데, 그냥 두고 간다.

다 볼수는 없쟎아.

뭐든지 100%다 하려고 하면 안된다.

80%만 하면 성공이다.

이번에는?

살아만 가면 성공이다.

 

 

저멀리 도로 끝으로 Gate of India 가 보인다.

대부분 네루의 작품들이다.

 

 

 에베레스트 Cafe 에 가서 밧타이를 먹고 싶었지만, 시간도 아직은 좀 일렀고, 그리고 ‘인도소풍’ 이란데도 가보고 싶어서 인도소풍에 가서 신라면을 먹기로 했다.

 

인도소풍 앞에서 웬 여학생이 너무도 반갑게 나를 맞는다. 빵끗빵긋 웃으면서. 갑자기 아는 사람인가, 혹은 인도에서 만났던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알고보니, (인도소풍 3층식당에서 함께 앉았는데) 자기도 오랜 인도 홀로 여행에 지쳐서 이제 귀국하는데, 델리에와서 한국 사람을 보니 무조건 반가웠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반가운 감정을 순간적으로 감출 수 없었던게지. . . . .

나는 내가 멋져서 그랬나 싶었는데. . . . .

아서라, 그 아이는 한양공대 대학원 학생이었다.

 

인도소풍에 와서 오징어짬뽕라면에 밥 말아 먹음으로써 다시 이틀치의 배고품을 해결하였다. 옆자리에 함께한 학생이 어쩜 그렇게 라면밥을 맛있게 드시냐고 놀란다.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은 인도소풍 3층. 그곳에 계속 하염없이 앉아서 한국 학생들과 노닥거리고 싶었지만, 자리도 비워줘야 하고. . . .

 

그렇게 빠간을 어슬렁 거리다가 공항 가서 비행기타고 출국수속하고 돌아왔다.

보아하니, 기침감기도 조금씩은 덜해지고, 열도 덜해지고, 죽을 병은 아닌 듯 싶다.

 

 

 

 

 

 

 

올때 남방항공에서 나온 기내식은 중국식이었다. 갈 때는 인도식, 올 때는 쭝국식.

집에서는 한국식.

 

 

 

 

 

그리고, 여행 내내 운명을 함께 했던 가이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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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해서 (14일 오후)

 

1) 짐 풀어놓고 하루동안은 무조건 집에서 푹 쉬고

2) 다음날, 우리 딸이 쓰던 스마트 폰 가지고 LG가서 기기변경신청 하고,

(우리 딸은 그 핑계로 새거 사고. . . .)

3) 혹시 물에 빠진 메모리가 살아있지 않나 컴퓨터에 연결해 보았지만

역시 메모리는 복구되지 못했다.

4) 작은 딸 여름이에게 “네 디카를 물에 빠쳐서 못쓰게 만들었다 매우 미안하다” 하고, “바로 인터넷에서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디카 값 40만원 적자는 또 어떻게 메꾸나. . . .

(물론 인도에서 ATM 으로 뽑은 병원비, 경비 일만 루피, 25만원도 적자다. 적자? 죽지않고 살아온 것만도 감사하다고 해라 이놈아.)

5) 다다음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삼성전자 서비스센타에 전화를 걸어 찾아갔다. 디카 수리가 가능한지. . .

다행히 서비스센타는 테크노마트 안에 있었다. 테크노마트는 괜히 마음이 편하다. 집 근처라서 워낙 많이 이용해서 그런지. . .

접수를 하고 좀 있으니, 이름을 부른다. 기사가 인사도 정중히 하는데 기분이 좋다. 따라 들어가니 설명을 하는데, 사진 찍은 것은 다 살아있다고 한다? “엥? 집에서 하니까 안 되던데요?” “아 그건 혹시 card reader가 구형이라서 못 읽을 수 있다”고. . . .“그리고 카메라는 살펴보고 2-3일후에 연락드리겠다”고. . . .

6) 곧바로 테크노 8층 가서 단골집 옆집 (단골집은 그새 없어졌다)가서 만천원 주고 카드리더 사 왔다. 사진 data, 살아돌아옴. 감격.

7) 이틀후, 삼성전자 전화, 디카 수리비 3만원 들겠는데요. . . 네 당장 고쳐주세요. . . .

정말 감사합니다.

8) 그토록 괴롭히던 기침감기는 약 일주일 후에야 잦아들었다.

9) 인도에 관한 것은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무슨 맘이 들었는지 여행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귀국 5주만에야 이렇게 끝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2012. 3. 18 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