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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베트남 여행기 21- 2018. 1.9. 호이안2

원 통 2018. 6. 23. 22:45

 

라오스 베트남 여행기 21- 2018. 1.9. 호이안2

 

호이안에도 절이 있다. 베트남 절은 중국 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은 원칙적으로 대승불교 문화권, 중국불교 문화권이다.

우리나라 절과도 거의 다르지 않다. 관세음보살 신앙이 깊고, 염불, 참선,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을 많이 본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중국불교는 도교와 많이 습합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차이나타운 절들은 대개 그렇다.

 

 

 

 

 

 

 

 

 

 

 

서양인들 몇몇이 절문 밖에서 쭈뻣쭈뻣 못 들어오고 있길래, 

내 절인 것처럼, 괜찮다고 들어오시라고 호기롭게 안내했다. 마치 베트남 사람인 것처럼. . .

부처님께 당당하게 절하고 불전함에 돈을 넣었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 . .

 

 

호이안에서 숙소를 구하는데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bed가 다 찼다고 해서 애먹었는데, 다행히 소개를 받아서 한군데에 묵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호아빈이란 곳인데)  업소가 상당히 커서 건물  두채를 운영하고 있었고, 1층에는커다란 풀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숙박료가 (다인실 bed가) 6불인가 했는데, 설마 이렇게 싼 숙소에 풀장까지 이용할 수야 있겠는가 했는데,. 얼마든지 마음놓고 쓰시란다 

숙박료에는 조식 값을 따로 받지 않는데, 다음날 아침 식사도 훌륭해서 

물론 식사값만 해도 6불은 넘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이 숙소를 누구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날부터 신체의 여기저기가 가려워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물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숙소(호아빈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애 약방이 있어서 호랑이 연고 (밬호) 를 달라고 했더니,

"벌레 물렸지요? 박호보다 이게 더 좋아요"  해서 3불 내고 그걸 사서 발랐다. 

그래도 뭐 바르나 안 바르나 큰 차이는 없었다.

 

 

 

 

 

호아빈 게스트 하우스가 조식이 너무 훌륭한데, 그래도 누구에게 권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여기도 서양인들이 많이 와서 bed 나기가 쉽지는 않다. 

 

 

 

 

 

직원들도 너무 친절해서 물것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 사람들도 뭐 별로 어쩌는 수는 없을 듯해서 그냥 말았다. 

 

*          *      *

 

호이안은 중국 상인들이 개척한 마을이라서 중국인 사회나, 결사체가 많다. 

중국인들은 해외 나가면 자기들끼리 조직을 결사하고, 함께 모여서 돕고 산다. 

 

 

 

 

 

 

 

 

 

 

 

무역상인들은 특히 바다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서 바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이 강하다.

바다의 안전을 지켜주는 천후성모님이시다. 

(카톨릭의 성모님도 여기서 나왔겠다. . . )

 

 

 

 

 

 

 

돌아오는 길에 박물관도 들렸다. 초기 개척당시의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호이안 마을 전경이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해변가를 가볼 생각이다.. 

아래는 인터넷에 소개된 호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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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會安)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곳인데, 일찍이 외국 무역상들의 출입이 빈번했던 국제 항구 도시였다. 이러한 이유로 호이안은 도시 자체가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언뜻 하노이의 구시가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지만, 외국 무역상들의 자취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의 외국인 중 일본 무역상이 최초로 집단으로 거주해, 한때 천 명 이상의 일본인이 상주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인들이 진출하여 마을에 거주했는데 아쉽게 현재 일본인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호이안에는 2,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세기부터 10세기까지 참파 왕국의 중심지로서 그 위상을 떨쳤다. 인근에 미 썬 유적지가 대표적이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올드 하우스라고 부르는 지역은 쩐 푸(Tran Phu) 거리, 남쪽 응우옌 타이 혹(Nguyen Thai Hoc) 거리, 강변의 박당(Bac Dang) 거리 골목이다. 쩐 푸 거리 서쪽 끝에 있는 내원교 주변에 볼거리와 식당, 상점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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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은 베트남 중부 쿠앙남다주에 있는 도시로 남중국해 연안에 위치한다.

파이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6세기 중엽 이래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상선이 기항하였고 무역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다.

 16세기 신항로 개척으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선두로 서양의 나라들이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16세기 이후 세계적인 교역망이 형성되었고, 많은 무역항이 발달하게 되었다. 믈라카 해협의 도시 국가인 믈라카는 페르시아 만에서 명나라까지 연결되는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항해지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믈라카를 점령한 이후 베트남 중부 해안에 있는 호이안을 중심으로 교역에 종사하였다. 당시 호이안은 중국, 일본 및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던 무역항이었다. 당시 도자기가 주로 거래되었으며,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호이안에 거류지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교역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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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베트남어: Hội An/會安 회안)은 베트남 꽝남 성의 남중국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는 약 80,000명이다. 한때 번성하였던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무역항이 있었고 19991129일부터 124일까지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개최된 제23차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이다.

 

 

호이안의 초기 역사는 참 족의 역사이다.

말레이계인 참 족은 기원전 200년경과 기원후 200년 경에 자바에서 이 곳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참파 왕국을 이루었고 훼와 냐짱까지 이 왕국의 세력하에 있었다.

1세기 경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구가 여기에 있었고,

람압포(Lâm Ấp Phố)라고 알려져 있다.

 

투본(Thu Bon)강의 어귀에는 참파 사람들의 예전 항구가 있었다.

이 항구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넓게 보면 15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베트남의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 항구였고,

여러 성() 출신의 화교와 일본인, 네덜란드인 등 서구 상인 그리고 인도인들이 드나들었고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하였던 곳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풍경이 자리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