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중국내륙 43 (2015. 8. 18. 화)-소주(蘇州)

원 통 2016. 3. 22. 21:31

중국내륙 43 (2015. 8. 18. )-소주(蘇州)

 

이번 여행의 목적 중의 하나가 소주에 가서 태허(太虛) 스님이 출가하신 절, 태허스님의 자취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었다.

태허스님은 1889년 절강성, 하이닝(海寧)현 장안진에서 출생하시고,

1905 16세때 소주의 무두(木瀆)에 있는 소구화사에서 삭발하였다.

(하이닝은 상해 남쪽 바닷가인데, 최근 바다 위로, 남쪽 소흥 녕파로 가는 긴 다리가 놓여졌다.)

 

----------------------------

한편, 인광스님(1862-1940)은 현대 중국에서 정토종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종장이시다. 아마도 현재까지 중국인들이 가장 믿고 존경하는 스님이 인광 스님일 것이다. 그만큼 인광스님은 개회기부터 지금까지 중국(대륙) 불교를 대표한다.


인광스님은 거의 평생동안 (상해 앞바다) 보타산 법우사(法雨寺)에 계셨다가 말년에(1930) 소주로 거처를 옮기셨다. 소주시내의 보국사(報國寺)에 7년동안 계시다가 그 후로는 소주 교외 무두(木瀆)의 영암산사(靈岩山寺)에 가 계시다가 그곳에서 입적하셨다. 지금도 중국 정토종의 중심은 영암산사라고 한다.

인광스님은 오랫동안 태허 스님의 뒤를 묵묵히 봐주고 밀어준 든든한 후견자였다.

 

소주는 유명한 관광지로, 정원이 유명하다. 오래 전에 졸정원, 한산사, 호구 등지는 가 보았는데, 이번에 졸정원과 사자림을 다시 가 보았다.

-----------------------------------

 


無錫에서 소주 까지는 가까운 거리이다.

지금은 고속철도로는 30분 밖에 안 걸린다.

요금도 얼마 안 하기에 (95위안-1700원)  그냥 고속철을 탔다.   


소주에 내리니 소주에도 지하철이 있다.

소주는 유명하지만. 비교적 다른 도시들보다 산업화, 도시화가 덜 되어있다.  경주 처럼.

아마도 무슨 古都 보존을 위한 정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삼성전자 공장이 소주에 있다-이건 중국투자 초기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하여튼, 다른 도시보다는 유명세에 비하여 인구도 많지 않고, 

도시화도 덜된 조용한 도시이다.

그런데, 이제 소주에도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다. 1, 2호선은 완공되어 현재 사용을 한다.   

소주의 원래 옛 이름이 오(吳)이다 . 즉 오나라(전국시대-삼국시대)의 가장 중심이 이 소주이다.


지하철로 이동한다.

http://blog.daum.net/wonthong1/15411818


예약한 유스호스텔이 있는 곳. 버스역 이름이 飮馬橋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여정을 쉬는 다리가 있는 곳이다





소주 시립병원 앞이다

아무리 그래도 공공의료제도는 중국이 우리보다 낫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유스호스텔, "浮生 四季"  유스호스텔, "떠도는 인생, 봄여름, 가을겨울." 





좀 쉬었다가,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섰다.

일단 졸정원을 간다



졸정원 입구에 소주박물관이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역시 소주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저런건 안 봐도 된다. 저거 보려고 하다가 진이 빠지겠다. . . .


졸정원. "졸렬한 정치"라는 정원.

정치가, (아니 정치가가)  더럽다고, 서로들 치고 박고 싸우는데,

(대통령이 독재를 할 수록 정치가들이 더욱 정신차려야 하는데, 정치가들은 오히려 충성경쟁만 한다.

그러니 정치가들이 더럽기는 한데, 그래도 더럽다고 이전투구에서 물러나는 사람도 없으니 확실히 더럽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혐오를 하면 그건 오히려 독재자들을 도와주는 꼴이다.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오히려 독재자들이다.

정치 혐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정치를 바로잡을 성자를 필요로 한다.)

그 사람이 문재인이나 김종인이 아닌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 졸정원은 1512년 정계에서 실각한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낙향의 원통함을 달래면서 지은 정원이라고 한다.

 



유명 관광지 답게 사람이 많다. 여기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 . .


그 옆에 있는 사자림도 정원이다.

대개 졸정원과 함께 구경한다.

이 사자림은 돌들이 더욱 볼만하다 





사자림은 원나라때 천여(天如)선사가 스승인 중봉(中奉) 화상을 위해서 지은 절이라고 한다.

중봉 화상은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잘 알려진 선사이시다.

선요를 지으셨던가? 아무튼, 이 선요는 절에서 배우는 강원의 1학년 교과서이다.

한국 스님들께 중봉화상은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시다.


스승을 위해서 이곳 돌산을 만드셨는데,

이 돌은 호수속의 석회암의 일종이다. 그래서 기암 괴석이다.


자, 이제 밖으로 나왔다.

졸정원과 사자림밖에도 물이 흐르고 배가 떠다닌다.  돈내고 탈 수도 있다.

북사탑을 보러 이동한다.

북사탑. 北寺라는 절이 있다. 그리고 탑이 있고.







 

북사탑 앞에 지은보은(知恩 報恩)이 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은 다는  뜻이지.


북사가 보은사이다.


이 탑은 오나라 손권이가 자기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목탑인데, 높이는 76미터, 9층 8각.  지금의 탑은 남송 시대에 다시 건립한 것이라고 함.

그런데, 역시 공사중이라서 가까이서는 못 보고, 멀리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손권이가 유독 효자였을까?

아마도 효행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던 것이겠지?

정치가가 집권을 하고, 권력을 취하고 하는 개인적 이유나 동기는 각각 다를 것이다.

사리사욕일 수도 있고, 이타적 목적일 수도 있다. 가치추구 행위일 수도 있다.

그것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아쇼카왕이나, 세종대왕 같은 성군도 있다. 정조대왕도 있고.


아무튼,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가 무엇이 되었건.

통치 이데올로기야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부모를 잘 모시라는 가르침을 위해서 이렇게 큰 탑을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거리가 觀前街이다. 소주의 중심 쇼핑가. 

 



如意門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도교 사원이 있다.

여의는 도교보다는 불교 용어라고 생각되는데. . . .




三淸展, 이것도 유명한데, 玄妙館의 삼청전이다. 원래는 276년에 건립.

(역시 소주가 흥성했을 때는 손권이 지배하던 삼국시대다)

이 건물은 1179년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서, 현존 도교 의 도관 중에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도 들어가서 절하고, 돈놓고 나왔다.

중국 사회가 잘 발전하는 것도 도교의 공이 큰 것이다.

도교나 불교나 서로 함께 돕는 것이다. 도교가 잘 돼야 불교도 잘 되고,

둘의 가르침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부처님 가르침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내 말을 싫어하든, 동의를 않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관전가를 나와서 마지막으로 정혜사를 찾아갔다.

정혜사는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소주 시내 한복판이 있는 절로서,

소주 불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대표적인 절이다.

전혀 관광용 절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절이다.


정혜사 골목이라고 써 있다.

오래전부터 여기는 "절골목"인것이다.

조계사  골목. . .그런 것 처럼.


정혜사가 많이 있는데. . .어디더라. . . 

지금은 수덕사의 정혜사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만공 스님도 오래 계셨고, 지금은 설정 스님이 계신 곳.)

아, 전주에도 정혜사가 있구나.

35년전 전주에서 군대생활 할 때 가끔 갔었지. . . .


 

"정혜사 골목:  옛 이름은 왕판사 골목. 현재 고적은 "라한원 쌍탑"과 "정전"의 유적지이다. 송대에 정혜사로 건립되었고, 청대에는 시인 袁學澖의 옛집이었다. 수성교 다리와 관태위교 다리가 있다. 현대 저명한 화가 미술가들의 미술관도 이 골목에 있다."

 



가보니, 정혜사는 시간이 지나서 문이 닫혀 있었다.  내일 와 봐야지.

 

나한원 쌍탑 유적지도 닫겨 있었다.



밤도 되었고. . .숙소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게 완톤 Wanton 이라는 건데 (한자는 좀 어렵다)_  일종의 물만두 같은 것이다.

물만두보다 더 씨가 잘다.

양이 적은데, 이것만 먹었는지  뭘 더 먹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게에서  바나나와 콜라를 사 가지고 들어와서 먹는다.






숙소가 편안하고, 아늑하고,  아기자기하다.

특히 여기 숙소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아주 좋았다.

역시 오랜 문명의 역사를 지닌 도시에 사는 시민은 질(質)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여기 직원인지, 직원의 친구인지 한 사람이 

자기가 한국말을 배운다고, 한국에도 여러번 갔다 오고, 한국 가이드 할 거라고 하면서

계속 말을 붙였다. 재미 있었다.

중국 시골 청년이 한국말을 썩 잘하니까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