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륙 28 (2015. 8. 7. 금) - 따리 2 숭성사 3탑, 마터우
중국 내륙 28 (2015. 8. 7. 금) - 따리 2 숭성사 3탑, 마터우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서 숭성사 3탑, 마터우(얼하이호, 부둣가) 등지를 돌아 보았다.
창산 골짜기로 가서 보는 코스도 두어개 있고,
가이드북에 보면 약간 교외로 나가서 (버스타고) 보는 (시골 시장 구경) 코스도 있다는 데 (씨저우 喜州, 저우청 周城), 뭐 古城지역 안보고 거기가지 갈 건 없겠다 싶었다.
또 내일은 리짱(麗江)도 보러 가야 하니까.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빌리는 값은 얼마 안 되지만, 물론 야찐-押金-보증금은 내야 한다. 나중에 돌려 받는).
비가 계속 추적추적 하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점점 추워진다. 추워진다? 그 더운 날씨에 게다가 남쪽으로 1000 Km를 내려왔는데 춥다? 정말이다.
그래도 뭐 어쩌는 수도 없고, 가지고 온 옷도 없고
(긴팔도 안 가지고 왔다. 설마 긴팔이 필요하랴)
그런데 자꾸 추워진다. 이러다가 감기 걸리겠다.
일단은 숭성사 3탑을 보러 갔다. 이 3탑은 굉장히 크고, 멀리서도 잘 보인다. 그래서 따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는 9세기 남조국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한다. 남소국이면 어디인가, 대리국 이전에 있던 티베트 계의 나라이다. 그당시에 벌써 이런 큰 탑이 있었다니. . .
그러니까, 남소국이라는 나라도 우리나라 고려나 통일 신라 정도로 생각되는 나라이다.
고려의 건국이 918년이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왕건은 그후 18년동안을 더 싸웠다. 통일신라와 그리고, 후백제 견훤과. 경순왕이 신라를 왕건에게 갖다 바친 것은 935년이다. 후백제는 936년.)
918년은 궁예가 왕건에게 태봉국을 물려준 해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실제로 태조 왕건이 2대 혜종에게 나라를 물려준 것은 943년이니까 실제로 고려를 다스린 것은 7년정도이다. 7년동안 왕 노릇을 하려고 평생 그토록 목숨을 걸고 싸우다니. . . .가엽도다.
그건 뭐, 김영삼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기껏 5년동안 해 먹고, 성수대교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 .뭐 그꼴 보려고 그토록 정치에 매몰했는지,
김영삼이 아니라, 실은 뭐 이성계도 그러하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고, 허수아비 공양왕을 세우고 그러다가 조선을 건국한 것이 1392년인데 (서울 천도 했다가 다시 개성갔다가 다시 서울로 옮기고 그 난리를 치다가) 불과 6년후에 2년동안 1차 2차 왕자의 난을 치르고, 새끼들이 형제간에 살육을 하는 것을 겪고, 태종 이방원이 등극한 것이 1400년이다. 불과 왕을 6년 해먹고 새끼들 끼리 다 죽이고 끝난 것이다. 이거 딴소리가 너무 길었네. . .
http://blog.daum.net/wonthong1/15411786
------------------------------
아침에 비가 오락가락 한다.
자전거를 빌려서 길은 나선다.
빌린 자전거.
하룻동안 잘 써 먹었지.
삼탑은 상당히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이름만 숭성사라는 절이지, 그냥 단순한 관광지라는 것이다.
9세기 대에 이런 찬란한 문화가 었었다면 그건 한족의 문화가 아니고, 티벳족, 혹은 백족의 문화인데도, 자기들이 정복하고 파괴해 놓고도, 그것을 자기네 문화라고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자랑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들 문화랍사고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정복의 뒷면은 완전히 눈가리고 아웅 한 채로.
그래서 여기다가 돈을 들여서 거대한 관광지를 짓고, 문화창달을 하고, 관광 수입 잡고,
국민들은 그 박자에 맞추어서 춤추고.
그러니까 여기는 미안하지만 불교와는 상관이 없고,
아는 사람만이 1100년전에 한족에게 망한 남소국의 슬픈 역사만 상상할 뿐이다.
어마어마한 관광지이다. 절대로 문화유적이 아니다.
이들, 한족들은 국가와 완전히 한통속인데, 말하자면,
나는 여행 중에 유스호스텔에서 많은 중국 청년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내게 티베트를 가보았느냐고 묻는다. 자기는 가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아주 좋다고, 꼭 가보라고.
티베트는 자기네들의 중요하고, 유명한 관광지, 유적지라는 거다. "자기네 중국의"
그래서 왜 그렇게 "중국 청년들은" 티벤트들을 가려고 하느냐 라고 물으니, 당당하게,
"그건 우리가 중국의 청년으로서 내나라 내민족을 알아야 하니까 가는 것이고
- 참 뻔뻔스럽기도 하다. . . "
동시에, "거기는 미개발지역, 가난한 지역, underdeveloped"니가 우리같은 엘리트 들이,
우리같은 여유 있는 한족들이 자꾸 들어가서
깨우쳐 주고, 개발시켜 주어야 한다" 는 것이다.
. . . . . . .
정말, 남의 나라 국민을 그토록 많이 죽이고 나라를 통채로 빿었다는 것을 온 세계가 다 알고 잇는데,
이들은 애들부터 어른 까지, 국민부터 정부까지 이렇게 뻔뻔하다. 참 기가 막힌다.
여기는 들어가 봐야 시간 낭비다. 삼탑은 밖에서도 충분히 보았고,
이것은 숭성사 앞에 만들어 놓은 대단히 큰 조형물인데,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문명이라고 한다.
역시 지난번 삼성퇴에서 보았던 것 처럼 특이하다.
비가 자꾸 오고, 자꾸 춥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데 문제다. 추리닝이라도 사 입어야 할테인데, 그러면 추리닝을 살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시내?까지 차편도 별로 없고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점을 상기하시라) 나가는데 한시간 들어오는데 한시간, 오전 시간을 그걸로 다 보내게 된다. 이거 어쩐다. . . .
별 방법은 없다.그냥 고민 하는 수 밖에. . . .
기념품 상점들을 기웃 기웃 했더니, 아, 자켓 비슷한 것을 판다 !!
심드렁한 표정으로 (박아지 쓰지 않으려고) 가격을 물어서, 좀 흥정을 해서 (사실은 비싸도 사야 할 판이지만, 안그런 척 하고. . .), 값을 약간 깎아서 샀다.
요즘은 중국도 과거 처럼 그토록 심하게 흥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까지는 박아지가 심했지만, 약 20년 동안에 가격이 정착되었다.
중국에서는 가격을 후려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오히려 낡은 것이다.
옷도 샀으니. . . .숭성사 3탑을 나와서 얼하이호를 찾아가기로 햇다. 그런데, 그 넓은 얼하이호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책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물어본다고 해도, 그 물음 자체가 너무 우문인 것 같아서 묻는다는 것도 그럴것 같고. . .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마터우 -즉 부두-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되는 것을. . . )
그래서 대충 어림짐작으로 여기저기 싸돌아 다닌다. 자전거라도 있었으니, 그걸 믿고. . .
다니다 보니 대리석 공장이 있지.
아, 여기가 대리지. 대리석의 본고장.
물론, 대리석 공장이나 채취장은 시골에 있겠지. 아니면 그건 역사적인 얘기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역시 대리에서 대리석을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리저리 자전거로 싸돌아 다니다가 어찌어찌 호숫가를 발견하였다.
결국 그 길이 마터우와 계속 연결되는 호숫가 길이었다.
호숫가를 찾기 위해서 농촌 골목을 헤맨다. . .
馬씨네 동네인가보다. . . .
헤매다가 큰 길로 나와보니,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주차해 있는데,
관광 쇼핑 센터다. 뭐 玉 같은 것을을 판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자전거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 저기 뭐가 있겠네. . . .
갈수록 자전거들이 점점 많아진다 .. . .그럼 그렇지. . .
야, 이런 것도 간다. 그럼 뭐가 있겠구나. . . .
그렇게 해서 얼하이호수 가에 도착했다.
이건 뭐 우리가 생각하는 호숫가는 아니다. 예쁘고 자그마한. . .뭐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고 바다는 아니니까 바닷가라고 할 수도 없고.
얼하이호 면적은 249 Km2.
충주호나, 대청호, 소양호 뭐 그런 것 보다는 크겠지?
얼하이 호숫가.
사진을 찍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돌을 던지는 사람. . . .
(김광섭 시인의 "마음" 이란 시에서. . . )
예쁜 꽃밭도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다 보고, 호숫가를 나오는데. . . .
아, 마터우로 가는 간판이 이제야 보이네. . . 0.8 Km
저기 또 가 봐야지?
그쪽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드디어 부둣가. 배 타는 곳.
뭐 배 탈 것은 아니고. . . . .
여기도 장이 서 있다.
아, 여기도 유스호스텔이 있네.
그러니까, 내가 보는 유스호스텔 사이트에는 안 나와있는 것도 많다.
다음 여행에는 china hostel 에서 호스텔을 검색해야 겠구나.
나오는 길에 란원(蘭園)에서 꾸며놓은 꽃길에서 또 사진 찍고.
숙소(유스호스텔로 돌아 왔다)
맛있는 만두를 배불리 먹고. . . . .
여기유스 호스텔은 무슨 돈많은 부자 (귀족?) 이 살았던 호화추택이었던 것 같다.
집안의 정원이 장난이 아니다.
또 대리 고성의 정문인 남문 바로 앞에 첫번째 人家 아닌가.
고급 관리가 살았던 집이었다고 생각된다 .
자 , 이제 좀 쉬었다가 어디로 가 볼까나. . . . .
요기
남문에서 북문까지 올라가는 길이 중앙 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