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 사찰 석굴 기행 (16) 7/16 (수) 서안-2일째-병마용,경산사지,천복사
서안 기행 2일째입니다.
전날 버스 보아둔 대로,
서안 역 동편에는 관광지 시외버스 노선대로 타는 곳이 있습니다.
遊 1, 遊2 이렇게 노선이 있습니디다.
병마용 버스 타고 도착. 학생들 단체가 많습니다.
입구에는 여러가지 시설과 장치를 해 놓고,
큰 분수대에는 말 조각상도 만들어 놓고, 큰 입구를 들어갑니다.
그런데 너무 넓고 모두 돌과 시멘트로 공원화 하여서, 무척 덥고 앉을 곳도 없습니다 .
한참 들어가요.역시 땡볕. . .
병마용 사진은 많이 보셨을테니까 많이 안 돌립니다.
아래 아가씨 사진은 과거, 처음 병마용 발견해서, 이렇게 박뭃\관화하는 과정을
찍은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크긴 크지요. . .저 뒤에 사람들 크기와 비교해 보면. . .
그런데, 이 병마용은 진시황이 살이 있을 때에 만든 것이라지요.
권력이 잇을 때 만들었으니까 가능했을 겁니다
물론 인근에 진시황제 릉도 있는데, 큰데,
그건 이세황제가 만들었고,
아직 권력이 남아 있었을 때니까 가능했겠지요. . . .
병마용은 현재까지 세군데가 발견되어서, 제1관 2 3관으로 부릅니다.
창문의 문양이 재미있습니다.
진시황의 모습입니다.
이 사두마차를 운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답니다.
전장에서 조금만 틀려도 당장 틀어지거나 고꾸라지니까,
황제의 목숨이 위태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두마차 마부를 가장 심복을 쓰고, 또 가장 능력있는 사람을 썼답니다.
이 사람이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렴 황제를 그냥 죽일 수도 있는 거지요.
따라서 그사람의 권력도 매우 높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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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은 그만 보고, 화청지로 넘어갑니다
화청지. . .양귀비가 당 현종과 놀던 곳이지요.
다르게 말하면, 당 현종이 양귀비라는 여자에 빠져서
정사는 안 돌보고,
나라 망하게 한 곳이지요.
(양귑지는 원래 당 현종 자신의 며느리였다지요. . . .18째 아들의 부인. . . )
정말 정말 여자 조심해야 해요. . . .
그게 부끄러운 일이지 뭐 좋다고, 이렇게 관광지로 호화스럽게 구며놓고. . . .
화청지. . .연못인데,
나중에 화청궁이 됩니다.
황제와 노는 여인이 계신 곳이니까 궁은 궁이 되겠네요. . .
혹은 화청 성이라고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름이야 어쨎거나
중국인으로서는 별로 자랑할 거리는 못되지요.
그래도 돈 받고 관광객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돈만 알아서 그런지 어쩐지. . . .
한가지 코멘트.
화청지는 그래서 화청궁이 되었는데,
그 1200년 후인 20세기, 즉 1936년에 장개석은 모택동과 싸움을 합니다
. 그게 내전이지요. 이른바 사상을 핑게로 한 권력다툼이지요.
공산주의자와는 무슨일이 잇어도 함께할 수없다- 일본의 침략으로
전 중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은데, (당시 국민당 정무의 최고 지도자인) 장개석은
일본군과 싸우지 않고, 모택동과 싸울 생각만 하지요.
당시 장개석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 화청궁이랍니다.
그래서 장개서의 휘하에 있던 장학량이 장개석을 연금시키고 (이른바 내부쿠테타)
모택동과의 합작을 추진합니다
그것이 제 2차 국공합작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게 됩니다
그게 지난번에 나온 서안사변이란 거라네요.
그 서안사변의 현장이 이 화청궁. . .
서안사변의 현장 두군데 다 가봤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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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원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뭔가 하고 들어가 보니
예쁜 여자들이 빵끗빵끗 웃고 반겨주는데. . . . .
웬걸. . . .호텔이래나 뭐래나. . .
하기야, 반바지에다가, 흙투성이 신발에다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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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나옵니다.
임동박물관인데요.
임동은 물론 이지방 이름이니까 그렇다 치고,
이 곳에서 1985년에 옛 절터가 발견되었는데, 그 절은 바로 경산사입니다.
짐작하시다시피 경산사는 문헌에 나오는 매우 큰 절이었는데,절터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경산사 터를 발굴하다가
사리함을 발견했고, 그 속에서 진신사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엄청 큰 뉴스가 되고, 사방에서 축하를 받고, 티베트 스님도 왔다 가고. . .
그렇게 해서 절 모양을 복원하고, 임동박물관이라고 이름하고,
그곳에 불사리를 안치시켰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중국에는 불교도, 스님도 거의 없엇던 시절이니까, 국가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건도 잊혀지고,
또 몇년전부터 중국의 모든 박물관에서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훌륭하지요)
그래서 이 임동박물관은 돈도 받지 않는데,
불사리가 그대로 안치되어 있고,
누구 뭐라는 사람도없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습니다.
보러 오는 사라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리함은 정말 영롱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가이드 북의 표현 대로라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 . .)
저는 불전함에 돈을 넣고 여러번 참배를 드렸습니다.
이 임동 박물관은 화청지 바로 옆에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좋은 데는 안 와보고, 자기들 역사의 부끄러운 곳만
꾸역꾸역 들어가서 봅니다.
덕분에 널널하게, 시원하게 구경했지요. . . .
다음은 경산사의 모형입니다.
여기 아주 조용하고 한적하고 시원한 곳이예요. . .
완전 맘에 들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