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불교닷컴 정평불 원고 8-부처님은 고기를 드셨을까.

원 통 2017. 3. 3. 22:41

 

부처님은 고기를 드셨을까.

 

 

 

 

 

1. 결론부터.

 

결론부터 말하면 부처님은 고기를 안 드셨을 것이다. 부처님처럼 생명을 사랑하시고 중생을 아끼시는 분이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하셨을 리가 없다. 이것은 나의 합리적인 판단이다. 인간은 판단을 합리적으로 한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첫째 자기가 죽이는 것이 나쁘다면 남이 죽이는 것도 나쁘다. 그래서 육식을 간접 살생(間接殺生)이라고 한다. 부처님처럼 영특하신 분이 그걸 모르실 리가 없다. 남이 죽인 것은 괜찮다? 이 변명은 상식 이하로 유치하다. 그것은 유치한 애들도 잘 안다. 그럼에도 훌륭하신 고승께서도 이런 이유를 대시는데. . .그야말로 애들이 웃는다.

 

 

2. 생명사랑

 

부처님은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마음아파 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그분의 자비심이다. “육식이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아시는 그분이 그것을 용인하셨을 리가 없다. 실례로 당신께서는 사문유관에서 벌레가 새에 먹히는 것을 보고 생명의 고통과 생명의 비참함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런 뿐께서, 그토록 영민하신 분이 육고기를 먹고 생선을 자실 때 생명의 비참함을 못 느끼셨겠는가. 그건 애들도 느낀다. 주부들도 주방에서 어육(魚肉)을 요리할 때 느낀다. 부처님께서 어떻게 동물이 죽은 살코기를 드실 수 있겠는가. 그건 상식적으로 볼 때 절대 아니다. 합리적으로 볼 때도 아니다.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음식을 소비자들이 먹을 때 그 음식이 육고기나 생선으로 된 것임을 연상시켜 혐오감을 느끼지 않도록 원래의 형체를 분해한다고 한다. 동물의 죽은 모습은 인간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살려는 생명을 누군가가 죽였고 그 결과로서의 이득을 자기가 보고 있다는 죄책감이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있는 것이다. 자기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 동물이 죽었겠는가. 여기 또 유치한 변명이 있다. 내가 안 먹어도 그 동물은 죽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살인자가 누구를 죽이고도 그런 변명이 통하겠는가?

 

이건 내가 직접 느낀 것인데, 대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부산 자갈치 시장에 놀러 갔는데, 거기서 살아있는 꼼장어를 회를 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너무 놀랍고 징그럽고 안타까웠다. 그 이후로, 내게는 장어류를 먹거나 그와 관계된 이야기나 간판 등만 보아도 생명에 죄를 짓는 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는, 장어가 아니라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모두에 해당이 된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죽임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그것을 착한 마음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 불교는 이런 착한 마음을 기르고자 하는 종교라고 본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런 착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 최대한도로 구현하신 분이라고 믿는다. 그런 부처님께서 육식을 하시거나 용인하시거나 권장하셨을 리가 없다. 이상이 결론이고, 다음은 사족 세가지다.

 

3. 경전에 드셨다고 나와 있다?

 

육식을 주장하시는 학자나 스님들은 부처님께서 임종 시에 무슨 돼지발바닥인가를 드셨다고 주장한다.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단다. 아시다시피 그 기록들이란 2천 년 전의 것들이다. 서지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불교 서지는 수많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많은 부파에서 작성되고, 왜곡 첨삭되었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는 기록이 많다. 그런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기록이 부처님의 중생사랑, 생명사랑, 살생혐오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오계 중의 첫째가 산 생명을 죽이지 말라 아닌가. 그러면 산 생명을 죽이도록 하는 육식도 당연히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다.

불전이나 론서에는 수없이 황당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있다. 비과학적인 얘기들도 많이 나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읽는가? “새겨읽는다. 여기서 새겨 읽는다는 것이 문자 그대로 읽지 말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판단하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도 남의 말을,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새겨 들으라고 매우 강조하셨다. 부처님께서 얼마나 말을, 글자를 불신하셨는지,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유독 돼지발바닥 이야기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주장하는 것은 무슨 심뽀인가.

돼지발바닥 얘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래서 어떤 학자는 돼지발바닥이라는 이름의 버섯이라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며느리 밑씻개라는 풀도 있는데, 그 경우라면 부처님께서 그런 풀을 드셨다는 것일게다. 설마 그 물건을 드셨겠는가 말이다. 그런 식물 중에는 애기똥 풀이라는 것도 있다.

 

4. 삼정육을 허락하셨다?

, 불전에 근거해서 삼정육을 당당히 주장하시는 법사님들도 여럿 보았다. 그런데, 이 분들은 불전을 다시 공부하셔야 한다. 정확한 내용인 이렇다. 비구나 불자가 병이 들거나 생명이 위독할 경우, 병을 낫게하기 위해서, 혹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육식이 꼭 필요할 경우에는 삼정육은 주어도 된다는 뜻이다. 멀쩡한 사람이 아무 때나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생활에서 3정육 아닌 게 어디 있겠는가.

독자들은 이 삼정육 얘기가 정말 눈가리고 아웅 식의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아실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너무도 쉽게 변명거리로 통하고 있다. 그런 말이나 안한다면 모르거니와, 이렇게 해서 불법을 능멸해서는 안된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다름 표현으로 하면 꿩이 도망한다고 하면서 모래 밭에 제 머리만 처박고 나서 다 숨었다고 하는 꼴이다. 육식을 불가피하게 하더라도 이런 거짓 변명을 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육식을 먹더라도 당당하게 먹어야 한다. 거짓 변명은 더욱 추악하다.

 

 

5. 남방 스님들은 주는 대로 먹는다?

 

주는 대로 먹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고기를 주니까 고기도 먹어야 한다는 변명은 되지 못한다. 이것 역시 애들도 쉽게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스님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스님이 만두를 먹거나, 육식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이 화들짝 놀라서 스님을 쫓아낸다고 한다. 스님은 당연히 고기를 안 자신다는 것이 일반화 되어 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절에서는 당연히 육식을 하지 않는다. 스님이 육식을 하시더라도 신도님들 앞에서는 하시지 않는다. 냉면에 고기 쪼가리가 올라 오더라도 슬쩍 아래로 깔고 드신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스님들이 고기 안 드신다는 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남방 스님들도 만일 고기를 안 드시면 신도들이 고기를 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스님들이 고기를 드시니까 드리는 것이다. 스님께 드리는 음식은 온갖 정성이 담긴 공양물인데, 차마 스님들께서 못 드실 것을, 드시면 안되는 것을 드리겠는가. 스님들이 고기를 드시니까 드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님들이 부처님 법대로 고기를 안 드시면 신도들은 고기를 안 드릴 것이다. 그러니, “주는 대로 먹는다는 것도 유치한 변명일 뿐이다.

설사 탁발 받은 음식에 고기가 섞여 들어온다고 해도, 스님께서 골라내고 드시면 되는 것이다. 유명한 이야기로, 육조 혜능 대사께서는 사냥꾼들과 9년동안 함께 피해 다니면서 사냥꾼들이 먹는 음식 가장자리에 채소를 익혀서 드셨다. 이를 육변채(肉邊菜)라고 해서 선가에서는 나름 유명한 이야기이다. 선방에서는 늘 이런 이야기를 배우면서 어째서 고기를 주니까 할 수 없이 먹는다는 그런 비굴한 말씀들을 하시는가.

 

 

-- 보충 세가지

 

1) 우선 이야기 듣기로는 남방에서 생활해 본 분들 말씀으로는 남방이 너무 더워서 고기를 안 먹고는 못 배기겠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말이다. 그러니 육식을 하더라도 그런 이유를 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남방 이야기이고, 사계절이 분명하고 너무나 기후가 좋은 우리나라는 아니지 않는가? 남방 스님들이 먹는다고 우리도 먹자? 따라할 것을 따라 해야지, 나쁜 것을 따라 하면서 변명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래서 중국 불교가 다른 것은 몰라도 고기 안먹는 법도 하나만은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얀마와 비슷하게 열대지방이라고 하는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채식을 하는 인구가 수억명이나 된다. 그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2) 둘째로, “그런 너는 얼마나 육식을 안하고, 얼마나 채식을 잘 실천하고 있느냐.

재가불자들은 육식 하면서 왜 육식금지를 출가스님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이냐.”는 주장이 있다. 나도 물론, 육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는다. 그러나 아직은 수행이 덜 되어서 좀 먹는다. 그래도 집에서는 절대로 안 먹는다. 집에서는 달걀도 안 먹는다. 다만 밖에서도 채식을 하려고 하지만 채식이 쉽지 않고, 특히 함께 먹을 때는 동료들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그냥 함께 먹는다. 어쩌다 고기를 먹더라도 역시 혐오감을 느끼면서, 그리고 죽은 닭에게, 돼지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 채식이 스님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님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속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있다.

 

3) 그럼 축산업자, 어부 등은 모두 망하라는 말이냐?

그런 직업은 부처님 법에 맞지 않는 직업이다. 그런 직업은 없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른 생업, 즉 정명(定命)의 뜻이다. 그럼 GNP 나 국가경쟁력은 어쩔 것이냐? 그러나 GNP나 국가경쟁력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축을 사랑하면서도 그 가축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겪는 아픔과 괴로움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들에게 그런 멍에를 지워주어서는 안된다. “살처분되는 닭과 돼지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애정을 주고 길러왔던 축산업자들의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괴롭다면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으면 된다. 스스로 지옥굴로 들어가고 나서 괴로워하는 그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국가경제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 하는 일이요, 그것이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국가에도 별로 이롭지 않다. 오늘날 물질과 재화는 차고도 넘치고, 그것들이 인간을 병들게 하고있기 때문이다. 다량의 육고기가 인간에게 무슨 이로움을 준다는 말인가. 그것은 심성을 망치고 건강을 망치고 지구를 망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