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11 서방정토 극락은 어디에 있는가.
11-1
이 글은 극락이 어디에 있느냐를 밝히는 글이 아니고,
“극락, 그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논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방정토를 극락이라고 한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따왔다.
인용1 ‘안양(安養)·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불토(無量光佛土)·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한다. 극락은 즐거움만이 있는 곳[樂有]이며, 이 즐거움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 의해서 성취된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아미타경 阿彌陀經≫에 의하면,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기천만 기십만의 국토를 지나서 있는 곳이며, 현재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태어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이 있다. . . .이 국토에는 지옥·축생(畜生)·사신(死神)이라는 명칭이 없고,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阿羅漢)이 수없이 많으며,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사람도 한량이 없다. 우리 나라의 고승들은 이를 공간적인 거리로 보지 않고, 마음 속에 있는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없애버리면 곧 극락이 된다고 본다. 곧 살생·도둑질·사음(邪婬)과 거짓말, 이간 붙이는 말, 악담, 유혹하며 속이는 말, 탐욕, 성냄과 어리석은 소견 등의 십악을 고쳐서 십선(十善)으로 바꾸고, 사견(邪見)·사사유(邪思惟)·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사방편(邪方便)·사념(邪念)·사정(邪定) 등의 팔사를 팔정도(八正道)로 바꾸면 그곳이 곧 극락세계라고 본 것이다. 아미타불은 법장보살(法藏菩薩)이었을 때 세운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성취함으로써 부처가 되었고 극락세계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십팔원에 근거해서 볼 때, 극락의 왕생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면서 염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염불이 무아삼매(無我三昧)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극락은 현실의 사바세계와 공간적 거리를 갖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고승들은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요, 현실세계와 극락세계가 불이(不二)라고 주장하였으며, 현실 속에서 극락세계의 실현을 희구하였던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선종·화엄종·천태종 등의 종파에서는 만법유심(萬法唯心)의 이치에 의해 자기 마음을 닦아 불성(佛性)을 깨닫는다는 취지 아래, 새로운 극락관인 자성미타유심정토설(自性彌陀唯心淨土說)을 주창하였다. |
인용 2 정토 (淨土) :청정토·청정불찰·정찰·정계·묘토·불찰·불국이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세계를 말한다. 중생들의 세계는 번뇌와 더러움에 가득한 예토인 데 반하여 부처의 세계는 깨끗하고 번뇌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에 정토라 한다. 정토에 대하여는 ① 실제로 이 세계를 떠난 곳에 부처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와 ② 마음의 청정함이 곧 정토라는 견해가 있다. 아미타불의 극락 세계는 대표적인 정토인데, 이를 묘락·안락·안양이라고도 한다. 법장비구(法藏比丘)가 48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이룩한 이 극락세계는 이 세계로부터 서방으로 십만억불국토를 지난 곳에 실재하고 있다고 본다. 참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하면 죽고 난 뒤 그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곳은 아무런 번뇌나 괴로움, 더러움이 없고 온갖 보배와 청정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항상 부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
일단, 정토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되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타방정토와 자심정토(유심정토)이다.
우선 정토와 극락은 같은 것이라고 본다. 다른 분의 글이다.
인용 3: 극락 極樂(수카바티 sukhāvatī) 극락은 불교의 사후세계로서, 불교의 여러 불국토 중 서방에 있다고 전해진다. 안양(安養),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불토(無量光佛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 세운 48대원에 의해 생겼으며, 지금도 아미타불은 이 곳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고 경전에 나온다. 극락의 위치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2]정도의 거리에 있다고 전해진다. 당연하지만 진짜로 죽 간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설마 진짜로 극락 간다고 서쪽으로 죽 가는 사람은 없겠지...생전에 진심으로 아미타불을 믿으면서 이름을 부르고 선행을 쌓아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극락정토에 대한 시각>> 불교 내부에서도 극락, 더 나아가서는 여러 정토에 대한 관념에 대해 약간의 시각차이가 있다. 극락왕생을 중시하는 교파, 특히 정토신앙이 핵심인 정토종 계열에서는 극락에 대해 이 세상과는 별개의 세계로 나누어 보는 타방정토설을 따른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상 세계인 정토(淨土)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예토(穢土)[14]를 구분짓고, 염불을 중심으로 수행하며 내세에 극락정토를 비롯한 여러 정토에 태어나는 극락왕생 사상을 중시한다. 이와는 반대되는 관점은 유심정토(唯心淨土)사상이다. 유심정토 사상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예토이면서 곧 정토라고 보며, 중생들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곳이 곧 정토라고 보는 관점이다. 두 설 모두 각각 <무량수경>(극락왕생설의 근간)과 <방광반야경>(유심정토설의 근간)을 기초로 하고 있어 어느 한 쪽만 옳고 그른 설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선종과 결합하여 선정겸수(禪淨兼修)라 하여 참선과 염불을 같이 연마해야 한다는 사상이 등장하였다. |
윗글에도 있듯이, 극락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다르다.
11-2
우선, 그 전에 극락이 어디에 있는가?
극락이 지구 서쪽에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인도의 서쪽에 그런 곳은 없다.
그럼 죽어서 가는 곳인가?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는가?
불교에서는 하늘을 33천 28천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어서 윤회하니까 죽음과 하늘과는 어느정도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런데, 불교의 28천이나, 33천에는 극락이나 정토 안양이라는 하늘은 없다.
극락정토는 하늘은 아니다.
불교의 기본 세계관에는 없는 곳이다.
아, 물론, 깨달은 상태, 열반의 상태도 아니다.
고승이나 부처님이 세상 버리시면 열반하셨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이 죽으렴 “극락왕생하소서” 그런다.
그러면 극락이란게 육도윤회의 일부분인가?
이건 기본 교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불교의 교리에는 없던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다.
극락정토라는 게 죽기 전에 있는 것이지, 죽어서야 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① 원래 초기불교(니까야)에는 극락, 혹은 정토라는 개념도 단어도 없다.
남방 상좌부에도 그런건 없다.
불교는 극락정토 없이도 2500년동안 잘 번성해 왔다.
그럼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이렇게 번성하는 극락정토란 뭐란 말인가.
② 이야기를 발바르게 하기 위해서, 선종 얘기는 잘라내자.
선종은 뭐 모든 것을 마음이라는 문제로 귀착시키니까, 그들이 극락정토도 마음에 잇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도 어느정도는 선종의 종도이다) 그럼 정토가 내 마음에 잇는지, 아니면 어디 타방에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나도 헸깔린다. 나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어찌 믿을 수 있나?
(믿음이란, 확실하게 앎. 의심없이 앎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우선, 정토가 극락이라고 했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상태는 열반이다. 즉, 열반이 아니고서는 세간의 고(苦)를 떠날 수가 없다. 고(苦)가 없는 것이 열반이다. 그런데 열반을 얻지 못하고도 극락이 있을 수 있나?
이건 교리 상의 확실한 충돌이다.
그래서 그 충돌을 회피하고자 여러 가지 생각이 생겨났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충돌한다.
열반에 이르지 않고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교리상의 모순이다.
11-3
초기불교에는 극락정토가 없었다. 상좌부 불교에도 극락정토는 없다.
중간에 갑자기 (대승불교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정토3부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근거하지만,
그리고 그 산스크리트 본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7세기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은 정토교의 근본 성전인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2권, 《관무량수경(觀無量t壽經)》 1권, 《아미타경(阿彌陀經)》 1권으로 된 3종의 대승경전(經典)의 총칭이다. 약칭하여, 《대무량수경》은 《대경(大經)》, 《관무량수경》은 《관경(觀經)》, 《아미타경》은 《소경(小經)》이라고도 불린다. 《대경》과 《소경》은 산스크리트어 원본, 티베트역이 있는데 《관경》에는 한역과, 이를 중역(重譯)한 위구르역의 단편밖에 없다. 아미타불 신앙에 의하여 극락정토(極樂淨土)에 태어나고자 함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는 이들 경전은 대승경전 중에서도 널리 일반 민중에 유포되었고, 특히 민중에 대한 감화력이 컸다. |
어쨎든, 인도에서라도 없던 것이 생겨난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도 보다는 중국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하여튼, 내가 오늘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상호 충돌하는 교리가 대개 별 의문 없이 버젓이 동시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흐리멍텅해서, 그 차이도 모르는 것인지. . .
서로 융섭(融攝)할 수 없는 세 태도가 공존하면서, 공존한다는 사실도 별로 느끼지 못하면서
말로는 또 융섭(화엄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융섭이다)이라고 한다.
융섭이라고 하려면, 그 세가지가 각각 다르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융섭이니 뭐니 얘기할 수 있다. 모른다면 그냥 모르는 거이고, 흐리멍텅한것이지 융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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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상좌부가 극락정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상좌부와 정토종은 서로 다른 종교 아닌가. 근본을 부정하니까.
또, 선종과 정토종도 마찬가지이다. 극락정토가 어디에 있느냐 했을 때, 그건 마음에 잇다라고 선종이 말하는데, 그건 정토종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왜냐. 그걸 받아들이면 선종이 되어 버린다. 아미타불 염불을 하지 말고, 참선을 해야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지말(支末) 교리에서라면 모르되, 그 교리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내용이 부정된다면 그건 같은 종교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거다.
아, 물론 선종과 상좌부도 매우 다르다. 그건 전에 돈점에서 많이 말씀드렸다.
그러니, 이 세가지는 서로 다른 종교 아니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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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나자신의 경우를 보자. 나는 염불 수행도 한다.
그런데, 그 극락정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이거 어렵다. 매우 어렵다.
① 내 마음속에 있다 ② 서방정토에 있다 ③ 죽어서 가는 곳이다 ?
나도 뭐가 답인지 잘 모르겠다. 나도 내 생각을 잘 모르겠다. 아 정말 헷깔린다.
정말 솔직히 말할까?
③ 죽어서 가는 곳은 아닌 것 같고,
① 내마음이 정토이면 정토인 것도 같은데, 그러나, 내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함께사는 이 세상도 정토가 되어야 할 것 같고,
② 그것이 열반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범중천, 비상비비상처천도 아닌, 다른 어떤 곳 같은데, 그런 곳이 잇을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극락정토를 믿는다.
야 이거 모순이네. . . .
?반대의견? 잘 모르면서 어떻게 믿나?
?답? 이제 생각하니, 어차피 종교란 잘 모르면서,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 믿는 거 같다.
그게 종교의 속성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 하늘나라 잘 아나? 그래도 그냥 믿는 것이다.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다들 잘 모르면서 믿으니까, 이러저런 얘기들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
이제 그만 결론 하자. 더 따져 봐야 나오는 것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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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1. 불교에는 공존할 수 없는 여러 교리들이 공존하고 있다.
같은 불교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기실 그것은 다른 종교이다.
서로 다른 것이 불교라는 이름으로 공존한다.
마치 업주가 서로 다른데, 프랜차이즈 치킨집처럼. . .
마치 삼성이 전자인지, 자동차인지, 물산인지, cgv인지, 병원재벌인지, 대학재벌인지. . . .
불교에는 그런 게 유독 심하다. 다른 종교보다.
그러니, 그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그러다 보면, 근본교리 (부처님)로서는 전혀 용납할 수 없는 것도
공존하게 된다. (아트만사상 처럼)
2. 동시에 모든 종교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종교다원주의) 원리에도 벗어나면 안된다. 이 두가지를 충족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는 정도에서 이 두 요청 사이의 분별은 필요하다. (어디가지가 같은 종교이고 다른 종교인지, 어디까지를 무아사상, 연기사상이 받아들여줄 수 있는지). 일단 불교의 근본은 무아(無我)사상과 연기(緣起)사상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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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공존할 수 없는 여러 교리들 중 대표적이 두가지만 더 하자.
① 불이(不二)사상과, ② 심외무물, 일체유심조. 마음 밖에 사물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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