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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사찰 석굴 기행 (19) 7/17 (목) 서안-3일째-청룡사 흥경궁

원 통 2015. 7. 22. 07:56

법문사 갔다 오느라고 어느덧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그래도 이대로 오늘을 끝내기에는 너무 허전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청룡사를 찾아갔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시간이  늦었다고 청룡사에 안 들여보내주면 어쩌나 생각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 가 봐야지.

 

청룡사에 가 보니, 문이 닫혀있는 듯 했다.

누군가가 지키고 있는데, 그래도 살금살금

쪽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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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는 (물론 서안에는 여러가지 큰 절이  있지만)  밀교(密敎)의 절이다.

그제 갔던 대흥선사도 밀교의 총 본산이지만, 여기도 밀교의 중요한 절이다.

 

일본은 밀교가 강하다. 

일본 밀교의 시조는 공해대사 (쿠우카이 空海)이다.

오오사카 근교 고야산에 있는 高野山 대학이

일본 밀교의 총본산이다.

(일본에는 천태밀교도 있는데 , 그것을 태밀台密이라고 하고, 공해대사의 밀교는 동밀이라고 한다.  경도에 東寺라는 절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  

 

그 공해대사가 중국에서 밀교를 전수받은 곳이 바로 이 청룡사라는 것이다.

공해대사는 그제 보았던 대흥선사에도 머물렀고, 청룡사,

그리고 내일 볼 향적사에도 머물렀다.

일본 사람들은 여기에 돈을 서서 그 기념물을 모두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혜초대사 간판, 불상 비석 하나 없다.

 

밀교 강의 사간에 내가 공해 대사에 대해서 조사 발표를 해서

비교적 공해 대사에 대해서는 좀 알고,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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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청룡사에 대해서 어떤 분이 쓴 글이다.

 

<<   혜과惠果(?~805)는 불공삼장의 제자로서 20세에 출가하여 불공을 따라 금강계를 공부하고 번역에 함께 종사했다. 밀교의 조정祖庭사찰이라 불리는 청룡사에서 주했기 때문에 ‘청룡화상’이라고 불리운다. 덕종과 순종의 귀의를 받았으며 많은 제자를 지도했다. 제자 중 한 승려가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공해空海대사(774~835)이다.   공해는 혜과惠果로부터 금태양부의 관정을 받고 순밀의 전법대아사리위를 얻어서 진언밀교의 법을 이어 받았다. 공해는 장기간의 유학예정을 바꾸어 다음해 806년 10월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갈 때 불구佛具 9종, 금태양부만다라도상 10축, 아사리부촉물 13종, 경궤논소장 216부 460권을 가져갔다. 그는 고야高野산에 금강봉사金剛峰寺와 교토에 동사東寺를 중심으로 일본진언종을 창종했다. 금강봉사는 현재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이며 세계문화유사에 등재된 사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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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청룡사는 일본 "우동"과도 관계가 있다는데,

일본우동이 이 청룡사에 머무신 공해대사가 중국 국수를 일본에 전한데서부터

유래하다는 것이다.

우동의 어원이 중국의 완톤이라는 거다.

사실 완톤(wanton)은 물만두 같은 것인데,  우동과는 다르다.

 

그 말이 맞든 안 맞든, 중국 국수도 일본 우동하고 비슷하다.

 

 

 

 

 

 

 

 

 

 

끝난줄 알고 쪽문으로 살살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웬 어린이 공원이 나오고. . .

시민공원. . . .

그렇다면. . .

정문으로 떳떳이 들어와도 되는 것을. . . .

폐문시간도 따로 없는 것을. . . .

 

 

그러니까, 청룡사는 이미 절은 아니고,

정부가 사적지로 발굴해서 보존하면서

공원화한 곳.

그러면서동시에 절을 하나둘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데 절이 지나치게 일본 풍이다.

아니, 중국풍을 일본 절이 배워갔나?

그럴 수도 있겠다. 어떤 분(불교미술을 전공하시는 태경스님. . .)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렇지만, 이 청룡사 건물은 그동안 보아왔던 중국 절과는 다르게

일본 절 냄새가 너무 난다. 

 

아마도 일본 진언종에서 돈을 상당히 받아서 복원하는지도 모르겠다. . .

확인은 안됐다

 

 

 

아니나 다를까,

청룡사라는 표지석 뒤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데,

일본스님 공해스님 기념관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란다.

 

(쿠우카이 스님은 물론 나는 존경한다. 일본사람들에게는 거의 우리나라 원효스님만큼이나

존경받는 분이시다.

지금 일본 시코쿠 지방에서는 해마다 순례수행과정이 있는데,

그것도 이 쿠우카이 스님의 수행행적을 따라서 걷는 프로그램이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 . . 

 

 

. . .

 

 

 

이제 흥경궁으로이동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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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경궁. . . .

 

흥경궁은 당 현중 이융기가 태자로 있을 때의 궁전이다.

그리고 그가 황제로 등극하여 양귀비와 연애를 즐기던 장소이다.

이태백과 이귀년(두보가 강남에서 만났다던 시인 그 이귀년이다)이 초대되어

축수를 올리고  하던 곳이란다.

 

당현종은 두가지로 크게 유명하다.

이전에 측천무후  과정 동안에 고종, 중종 ,예종을 갈아치우면서  50년동안 권세를 누리던

측천무후가 죽고, 국력이 한참 쇠퇴했을 때

이융기는 젊은 나이에 정적들을  다 처단하고, 제위에 올랐다.

당나라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걸 소위 개원(開元)의 치라고 한다지.

둘번째로 유명한 것이 양귀비 건이다.

당 현종이 나이가 들어 60이 넘었는데, 젊은 여자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것도 원래 자기 며느리였다지,

이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너무도 좋아하고, 더우기 이백의 시로서 더욱 유명해 졌다.

(이백은 당현종에 의해서 발탁도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안본다.

당현종과 양귀비의 관계는 사랑이라고볼 수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60 늙은이와 스물 몇살 된 여인과의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이건 누구라도그렇게 생각될 터인데도 지금까지도 천년 이상을 아름다은 사랑이야기라고 회자되는 것이 또한 이상하다.

그 사실 자체가 인간의 이상한 속성을 보는 듯하다.

 

늙은 이가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다. 박정희도 채홍사를 두고 나이 들어서까지 매일밤 젊은 여자들(주로 연예인)과  관계를 했다지,

권력이 잇으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양귀비 쪽인데, 양귀비가 현종을 인간적으로 사랑했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만한 권력이라면,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면 사랑이고 뭐고가 있겠는가.

그건 어느 여인이라도 그러한 것이겠지.  

매일밤 황제와 하룻밤을 지내기를 학수고대하는  궁녀가 수천명 된다지 않는가.

그걸 양귀비가 현종을 사랑했다?  그건 너무도 지나친 미화 아닌가.

(양귀비가 머물렀던 화청궁 입구에는 현재 엄청나게 큰 두사람의 러부씬  모습이

만들어져 있다)

 

양귀비가 현종을 사랑해서 만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가 오랫동안 안록산과 밀회를 즐기고 사통을 하고 결국은 안록산의 란을 초래하게 된 역사적 사실로도 명백하다.

그것 또한 있을 수잇는 일이라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권력을 위해서 황제에게 교태를 부리고  사랑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고, 역사의 치욕이다.

 

 

내가 말하는 미스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인이 그것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고 역사의 자랑거리로 치장하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너무도 부끄러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윤색해서 조금이라도 그 부끄러움을 덮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엇겠나. . .""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본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치욕이 아름다운므로 치장 되겠나. . . . . . .

 

1979년 궁정의 살인이 있었던 날.

박정희가 그 두 여인을 사랑해서 불렀겠나 혹은 그 여인들이 박정희를 진심으로 사랑했겠나.

그러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분칠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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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홍경궁은 그 댱현종의 개인궁궐이었다는 것이다. 양귀비와 놀던. . .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개방되어

시민들의 품으로돌아왔다.

청룡사에서그리 멀지 않기에

버스 한번 타고손쉽게 찾아 왔다.

 

 

 

 

황제 개인의 위락지를 시민의 품으로. . .

 

 

옛날에 우리 딸이 어릴때 좋아했던 회전목마. . . .

요즘은 자전거를 좋아해. . .

우리 딸은 타는 것을 좋아해. . .

 

 

 

 

 

 

여기가 흥경궁의 중심이 되는 침향정입니다.

당현종이 양귀비와 놀았다는 중심건물이랍니다

지금은 아줌마들이 포크댄스를 추며 놉니다.

 

황제 혼자 여인과 즐기는 것과

백성이 함께 즐기는 것이 어느 것이 좋은 것이냐. . . .

 

 

 

 

 

 

벽에는 당시의 환락을 재현하는 석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시민 체육공원입니다.

건강증진, 중요합니다.

병원이 많은 것보다, 훌륭한 의과대학이 많은 것보다,

의사가 많은 것보다

정부가 얼마나 공중보건과 시민 건강증진을 잘하느냐가 훨신 중요합니다

우리보다 병자가 많고, 우리보다 뚱뚱이가 많고, 우리보다

고기만 디립다 먹는,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일직 죽는

미국사람들의 잘못된 의료제도를 배워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의료민영화는 바로 그런 "천하에 못된 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한 사회가 망하기는 금방입니다.

천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원각사탑, 월정사탑도 한순간 무너지기는 금방입니다.

 

전하 , 통촉하시옵소서 !!

 

 

 

 

 

시민들은 공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이렇게

음악을 생활화하고있읍니다.

 

음악이란 결코, 전문 음악가의, 전문 성악가 기악가의 물건이 아닙니다.

비싼 돈주고 입장료 물고 들어가서

점잔빼며 듣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서 즐기는 것입니다.

 

 

 

 

 

 

 

 

 

 

 

 

 

 

 

밥은 먹고 들어가야져?

매일 국수하고, 만두만 먹다가

밥을 먹으니 행복합니다.

 

 

 

 

 

 

 

이 정도의 밥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을. . . .

들어가 자고. . .

내일은 향적사, 초당사, 흥교사, 화엄사를 찾아가 보아야지. . . .

 

내가 서안에 온 중요한 목적.

이 네개 절을 가 보는 것.

그러나 자료는 거의 없다.

헤매고 찾아 보아야 한다.

 


 

출처 : International Dharma Instructors
글쓴이 : 圓通 김광수1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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