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온난화 그리고 컴퓨터. . . .
1. 자본자유화
이 글의 주제는 자본자유화(세계화)와 생태위기이다. 이 글은 주로 내 생각은 아니고 요즘 본 좋은 책들에게서 배운 생각이다. 잘 아시다시피, 자본자유화가 오늘날 세계 민중을 도탄, 불행과 죽음에 빠뜨리고 있는 제일 원인이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세계시장의 구축은 또다른 형태의 식민주의이다. 그리고 자본은 그 무한성장적 속성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인간을 노예화하고, 도구화하고, 지구를 파과하고, 자원을 파괴한다. 과학기술과 성장논리 그 자체가 죄악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높은 지엔피를 좋아하고, 성장 발달을 좋아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이나 담배, 마약이나 말초적 놀이가 사람들을 망치는 것과 같다. 원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파멸로 가는, 멸망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자본, 성장, 생산, 소비 자체가 그렇다.
자본의 성장에 한계가 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공장을 세계화하고, 판매시장을 세계화하고, 인력시장을 세계화하는 것이 무역세계화이다. 이 과정의 결과로 세계는 자연스럽게 신식민주의 구조로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비자본주의 사회, 전자본주의 사회도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되었다. 그것이 세계무역체제, WTO 체제, FTA 체제이다. 결국 이 체제는 자본에게 유리한 체제이고, 자본이 공룡처럼 커나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체제이다. 그동안 세계무역 체제가 없이도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세계무역 체제 아래에서 사람들은 한없이 자본의 종살이를 하며, 특정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세포이동, chemotaxis를 하는 원생동물 유그렐라처럼, 돈이라는 한가지 가치에만 목매다는 단세포적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독버섯처럼 자라게 된 것이 투기적 자본의 이동이다. 투기적 자본의 해악을 여러나라에서 겪었고, 앞으로도 더욱 심하게 겪을 것이다. 1997년 IMF사태, 2007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2008년 모기지 사태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유로존 사태나 그리스 스페인 재정위기 사태 등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자본이 생산적 과정에 투입되지 못하고 (생산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너무 많이 생산되고, 그것들이 모두 팔리지는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본은 금융부분에 투자를 하게 되고 (즉 돈으로 돈을 버는 부문), 과도한 금융 경쟁으로 인하여 해악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게 되고, 결국은 그것이 경제위기를 촉발시키는 것이다. 은행이 신용을 근거로 과도한 여신을 발행하는 것부터가 문제이지만 (은행의 지불준비율 비율은 대개 10% 정도이다. 즉 은행은 10조원만 가지고 있어도 100조원을 남에게 꾸어줄 수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일이 별게 아니다.), 수많은 투기적 파생금융상품과 외국인투자 자유화 (즉 투기 자유화)등이 경제위기를 촉발시킨다. 이로 인해서 한 정부가 파산하고, 국가의 기본이 흔들리고, 수많은 민중들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고 투기꾼들이 도시 하나, 나라 하나를 집어삼킨다. 이런 것이 과연 인류를 위협하는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자본의 힘에 눌리어, 혹은 자본의 유혹에 눈멀어 바로잡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이고, 나라의 정책을 바로 그 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음이 큰 문제인 것이다. 아주 확실한 해결책이 많이 있음에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끌려가고만 있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저러히 있지만, 모두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현실을 보면 결국 인간이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아지 못하고, 인간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비참하게 맞이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가 망하게 되리라는 희망어린 사상(책들)도 많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가 인간을 말살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나도 자본주의가 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망해도 되는 것일까. (“자본의 세계화 어떻게 헤쳐나갈까, 웨인 엘우드” 참고)
2. 생태환경 문제와 지구 온난화문제
이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인류의 존속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원자력발전까지 가세한다. (원자탄을 사용하는 핵전쟁까지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이 문제는 분야로 볼 때 크게 보아 세 부분인데,
1) 자원의 고갈- 석유 등 화석자원의 고갈, 물 식수, 혹은 삼림의 파괴, 산소 고갈 등= 즉 자원 보존의 문제.
2) 화학물질과 오염물질, 유해물질로 인한 대기오염,수질오염, 식품오염 등 인간의 건강과 생존에 미치는 유해물질들.
3)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실효과, 생물자원의 멸종 등 총체적인 지구파괴.
(A) 그러나, 위정자들, 혹은 자본가들, 그리고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심각하게 생각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본의 힘으로, 혹은 과학으로, 기술력으로 극복하리라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구호들이 그것이다. 설사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성장을 멈추어야 하고, 생산을 중단해야 하고, 기름값, 전기값, 물값을 올려야 하고, 원전을 중단해야 하므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당장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현재 국가 정책이고, 환경부가 취하는 태도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환경생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너무도 자명한 오답을 너무도 당연히 국가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하고 있다. 확실히 길이 아님에도 당연히 그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생태 이념이라고 해서 학자들은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은 피상적 생태학(shallow ecology)이다.
(B) 그것을 피상적 생태학이라고 이름붙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정으로 옳은 생태학을 주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은 심층생태학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였다. (deep ecology). 물론, 앞의 주장보다야 지구생태의 위기를 잘 알고 있고, 근본적인 변혁을 필요로 한다는 데서 이들의 주장에 옳은 것이 훨씬 많다. 이들의 옳은 말씀은 많이 나와있고, 다 옮기기도 어려워서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만 말하겠다.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깨워주는 것은 좋은데, 이들의 주장에는 상당히 지나친 면이 있다. 주객이 전도되는 면이 있다. 즉 지구가 목적이고, 생태가 목적이고, 오히려 인간은 등한시되는 것이다. 즉 생태보호 행위나 사상이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생태 이외의 가치를 거의 무시하거나, 혹은 아주 사소한 생태라도, 아주 중요한 다른 가치보다 매우 중요하다는 태도 들이 그것이다. 생태 지상주의라고나 할까, 맹목적 생태존숭주의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이들이 지구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라거나 (가이아 이론) 혹은 흙이나 땅을 종교적 차원에서 존숭하거나 (종교도 아닌 것이) 그런 데까지 나아가는 모습에는 실망스럽고 짜증나기도 한다. 생물종의 보호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 일에 있어서도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다. 인간을 끌어내리고, 동식물을 옥좌에 올려놓는 모습들이 그렇다. 이들은 원시상태의 보존이 옳다는 주장을 어느 가치보다 우선하는데, 이들의 주장을 보면 원시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 만이 지상과제인 듯이 느껴진다.
이제, 이러한 근본생태주의자가 되기는 매우 쉽다. 그저 맹목적으로 생태, 자연 원시만 숭상하면 된다. 그러나, 그 상태가 반드시 인간이 성취해야 할 이상향도 아니지만, 그런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환경 생태의 문제는 자본이 저질러 놓은 일임에도 이들에게는 그러한 자본원죄론에 대한 생각이 매우 희박하다. 그것이 문제다. 그러니, 이들에게 이 문제를 맡겨 놓았다가는 날새겠다 싶은 것이다. 이들은 그저 월든 호수가에서 자연을 즐기고, 원시인이나 인디안의 노랫소리나 들으면서 지내면 행복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함께 환경파괴의 주적인 자본에 맞서 싸우자는 말을 해도 이들은 별로 관심을 안 가질 것이기에 나는 이들에게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C) 그런 면에서 내 생각과 비교적 가까운 것은 머레이 북친이다. 머레이 북친의 사상을 이른바 사회학적 생태학이라고 한다고 한다. 생태파괴의 원인이 사회적인데에 있다(특히 주로 자본에, 그리고 그것에 봉사하는 정권에 있다) 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리고 생태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나 대변하는 피상적 생태학이나, 인간 마져도 자연보존의 수단으로 삼고 (그들은 인간이 자연파괴자이니까 인간존재 자체가 해롭다고 말한다), 맹목적으로 자연보존만을 우선으로 삼고, 오히려 자본의 해악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식한 근본생태주의자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북친의 모습은 씩씩하다. 그의 책 제목이 “휴매니즘의 옹호” 라던가. (문순홍이 번역한 “사회생태학의 철학”이란 책도 있다. )
그러나, 나는 그가 무정부주의를 주장한다거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운데, 그것이 무정부주의를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가 가능하지도 않지만, 강력한 민중의 정부가 지구와 환경 파괴하는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 화급한 시기에 무정부주의라니! 혹은 그가 자본이 괴멸된 이후에 목가적 평화를 무정부 상태라고 말할이지 모르겠으나,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고, 도래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는 더욱 해악한 정부가 드러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송명규, “현대 생태사상의 이해”, “환경윤리와 생명가치-한국불교환경교육원”, “환경윤리학의 제문제, Robin Atfield”,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존 벨라미 포스터” 참고)
3. 얼마 전 본 이런 책들에 의한 내 생각은,
지구 생태위기나 자본의 위기 등등이 닥치면 사람들은 동요하고, 불안해 하고, 어떤 자그마한 극단적인 변화나 조짐에도 흔들린다. 즉 사회가 취약해 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결국 사람들은 강력한 영도력을 원하게 되는데(그 성격이 무엇이든) 결국 독재체제나 극우세력이나, 전체주의가 들어서기 쉽게 된다. 혹은 전쟁이 발생하기도 쉽게 된다. 자본주의가 망했다고 해서 평화가 오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 시대처럼 (혹은 부쉬 정권처럼) 미친세상이 오게 된다는 말이다. (존 그레이, “추악한 동맹” 참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미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이 글에서 다 말해 놓았다. 단지 인간들이 실행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한가지 사족이다. 오늘날 자본의 자유로운 세계이동은 컴퓨터를 통한 전산망의 통합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가능해 졌다. 만일 컴퓨터만 없었다면 투기적 자본이 전지구적 투기를 감행하지도 못할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없을 것이다. 컴퓨터는 이로운 물건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롭더라도 해로운 점이 더 많거나, 혹은 지금의 금융위기처럼 그것 때문에 전 인류가 다함께 망할 위기에 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나는 오늘날 컴퓨터를 통한 전세계적 금융의 통합전산망 구축이 핵무기만큼이나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검퓨터 기술을 발전시킨 마이크로소프트 사나 스티브 잡스 이런 사람들은 핵무기를 개발한 사람들만큼이나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도 전세계의 핵무기를 폐하는 것이 마땅하듯이, 금융 전산망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악한 자본주의의 맥을 끊는 길이다.
2012.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