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속의 인물 127(스위스:1000Francs-부르크 하르트)
부르크 하르트( Burckhardt, Jacob)
1998년 발행
1818년 5월 25일-1897년 8월 8일
Jakob Christoph Burckhardt라고도 씀.
역사가, 미술가
예술사와 문화사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바젤의 신교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신학을 배우다가 역사 ·미술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1839년 베를린대학에 들어가, L.랑케에게 역사학을 배웠다. 한편 독일 ·이탈리아의 미술을 연구하여 미술사가(史家)로서도 인정을 받아, 1858년 바젤대학의 사학(史學) ·미술사 교수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인데, 이것으로 그는 랑케가 정치사에서 차지한 것과 같은 위치를 문화사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르네상스사(史)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명저로서, 이후 ‘르네상스’란 말은 역사상 일반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는 역사 연구의 임무란 ‘발전’이 아니라 ‘항상적(恒常的)인 것, 반복되는 것, 유형적인 것’의 3가지를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데 있다고 말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의 손으로 《그리스문화사》(1898∼1902) 《세계사적 재고찰》(1885) 등이 발간되었다.
화폐속의 인물 128(스위스 50프랑-소피 토이버 아르프)
소피 토이버-아르프(S. Taeuber-arpTauber-Arp)
1889.1.19 ~ 1943.1.13
스위스 조각가,
50Franc
스위스 다보스 출생으로 사립학교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공업디자인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독일의 뮌헨의 응용
미술학교인 뎁쉬츠학교졸업하고 함부르크의 산업미술학교도
1년동안 다녔다.
취리히에서 기하학적인 모양의 직물 디자인, 자수, 그리고 직조
작품을 제작하였다.
1916년 취리히 산업미술학교에서 직물반의 담당자로 있으면서 헝가리
무용극인 루돌프 폰 라반의 현대무용을 공부하였다.
1930년 화가들의 모임인 ‘사각형 그룹’에 가입하였고
1937년 국제 미술잡지인 “프라스틱”발간에 참여하고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화폐속의 인물 129(스위스 100프랑-자코메티)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98년 발행
1901년 10월 10일-1966년 1월 11일
스위스의 조각가·화가.
보르고노보 출생. 스위스의 인상파 화가인 G.자코메티의 아들이다. 1919년에 제네바의 미술 공예학교에서 조각을 배우고, 이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고대 미술품에 감명받았다. 1922년에 파리로 나와 평생 그곳에서 제작 생활을 하였다. 파리에서의 최초의 4년간은 그랑드 쇼미에르 미술연구소의 E.A.부르델 교수 밑에서 조각과 데생을 시험하여 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을 조형하는 어려움에 절망하여, 1925년경부터는 사생(寫生)을 중지하고 상상력에 의한 관념적 공간조형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것이 추상적·환상적·상징적·전율적인 일련의 오브제(objet)였으며, 이것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서 높이 평가되어 1929∼1934년 초현실주의 그룹의 한 중요 구성원으로서 권위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5년 이후는 사생(寫生)에 의한 조각에 몰두하여, 고독과 침묵 속에서의 오랜 탐구 끝에 1948년에 공허 속에서 응결된 것과 같은 가느다란 조상(彫像), 즉 그 자신은 철사와 같이 가느다랗게 깎이면서 그 주위에 강렬한 동적 공간을 내포한 날카로운 조상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이 주목을 끌어, 이후 조각계의 제1인자로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동시에 입체적인 공간을 유화로 추구하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또한 예리한 묘선(描線)에 의한 데생과 판화에 있어서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제작은 모두가 눈에 보이는 현실―공허 속에 나타나는 허상(虛像)―그대로를 보이려는 시도였으며, 서유럽 조형미술의 전통에서 가장 현대적·전위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1951년의 상파울루 국제전람회에서 조각상을 받았다. 작품에 철사를 사용하여 새장과 같은 공간구성을 주제로 한 《옆으로 눕는 여자》(1929) 《쉬르리얼리스트 케이지》(1930), 《오전 4시의 궁전》(1932∼1933,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등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작품인 《가리키는 남자》(1947. 테이트 갤러리 소장) 《디에고의 초상》(1960, 파리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화폐속의 인물 130(스위스:10Franc-오일러)
오일러(Euler, Leonhard)
1707년 4월 15일- 1783년 9월 18일
1979년 발행
스위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바젤 출생. 주로 독일 ·러시아의 학사원을 무대로 활약하였고, 해석학의 화신(化身), 최대의 알고리스트(algorist:數學者) 등으로 불렸다.
그의 연구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 ·식물학 ·화학 등 많은 분야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바젤대학에서 신학과 헤브라이어를 공부하였으나, 수학에서 J.베르누이의 관심을 끌어 곧 D.베르누이, N.베르누이와 사귀었다.
이와 같이 베르누이가(家) 사람들의 조언과 상트페테르부르크학사원에 간 베르누이 형제의 소개로, 처음에는 그 학사원의 의학부에 이어서 수학부에 적을 두었다.
1740년 프리드리히대왕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24년간 베를린학사원의 수학부장으로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점차 궁정에서의 인기가 떨어져 다시 예카테리나 여제(女帝)의 청을 받자 176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후에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으나 천부적인 기억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수학자로서의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뉴턴이 죽은 시기에 해당하여 해석기하학 ·미적분학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조직적 연구는 초보단계로 특히 역학 ·기하학의 분야는 충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한 미적분학을 발전시켜 《무한해석 개론 Introductio in Analysis Infinitorum》(1748) 《미분학 원리 Institutiones Calculi Differontial》(1755) 《적분학 원리 Institutiones Calculi Integrelis》(1768∼1770), 변분학(變分學:극대 또는 극소의 성질을 가진 곡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창시하여 역학을 해석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밖에도 대수학 ·정수론(整數論)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도 삼각함수의 생략기호(sin, cos, tan)의 창안이나 ‘오일러의 정리’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를린 시대에 프리드리히대왕의 질녀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독일 왕녀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계몽서로서 유명하였으며 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